아래는 <삼국사기/고구려본기> 모본왕 2 년(서기49년) 기사입니다.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습격하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하므로 이내 다시 화친하였다.
春 遣將襲漢 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 蔡彤 以恩信待之 內復和親
아마도 위 내용은 <삼국사기> 기록 중에서 한국통설의 지리 기준으로는 사실로 믿기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내용일 것입니다.
즉 위 추정도와 같이 고구려 전 시기에 걸쳐 강역을 크게 확대시켰다고 알려진 광개토태왕 시기의 서쪽 국경선도 훨씬 뛰어 넘어 장성을 돌파하고 후한 시기 동북 강역 방어의 심장부인 유주 치소였으며 지금의 북경과 그 서북쪽에 설치된 상곡까지 유린하고 이후 보정.석가장 보다 더 서남쪽에 위치한 태원까지 장수를 보내 기습하였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요동태수가 말단 심부름꾼으로 나서서 고구려 모본왕을 달랬다는 기록까지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러한 <삼국사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요?
그러면 모본왕 시기보다 약 150 여 년 전인 서기전 108 년에 대한반도 내 지금의 평양까지 공격하여 점령하고 낙랑군까지 설치했었다는 기록은 어떻게 사실 중의 진실이라며 확신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쇄뇌를 한답니까? 서토의 한나라 군사는 언제나 저런 거리의 공격은 가능한 전능한 군사이고 동방의 고구려는 요동.현토군 밖을 나서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대체 무슨 근거로 <삼국사기> 기록을 부정하려 합니까?
한국 강단사학이 늘상 주장하는 말도 안되는 논리인 `삼국 초기 기록`이라서?
진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고구려 전 시기에 걸쳐 고구려의 서쪽 국경선이며 전.후한이 설치한 요동.현토군의 동쪽 경계선 역할을 했던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가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 지금의 란하 정북쪽 지류이기 때문입니다.
즉 고구려 강역은 지금의 란하 동쪽 지역의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북평.어양.상곡 지역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며 기습군의 상태나 기습지역의 방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군사를 운용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태원까지도 내려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란하에서 서쪽으로 상곡을 거쳐 태원까지 내려가는 게 무에 그리 어렵다고 미리 손사래를 칩니까?
이게 다 새빨깐 식민사관때문입니다.
즉,
<한서/지리지> 요동군 망평현에 주석된 1250 리 길이의 대요수는 지금의 란하 중류의 서북쪽 지류이고,
현토군 서개마현에 주석된 2100 리 길이의 염난수는 지금의 란하 정북쪽 본류입니다.
또,
<청사고/지리지> 직예성 승덕부의 속현인 적봉현.건창현.조양현 및 봉천성 금주부 반산현에 기록된 황하.사하는 지금의 란하 중류로 흘러드는 서북쪽 지류이고 <한서/지리지>의 대요수이며,
봉천성 해룡부.창도부.신민부.법고직예구.봉천부.금주부 등에 기록된 요하는 지금의 란하 정북쪽 지류이고 한 시기의 염난수입니다.
이러한 대요수.염난수였으며 황하.요하 물길을 현재의 중국지도에서 제대로 지목해 내지 못하면 대한민국 역사는 고대 2000 여 년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대 2000 여 년간의 터전을 중국에 빼앗기는 것입니다. 즉 왕검조선과 그 선조들이 일군 문명인 소위 요하문명을 중국에게 헌납하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지금의 중국 요녕성 땅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조작도 - 아세아동부여지도(亞細亞東部輿地圖)
일본기원(紀元) 황기(皇紀)2535년, 명치8(明治8,1875) 년에 일본 육군참모국(陸軍參謨局)에서 발행한 동아시아 지도. 아세아동부여지도의 초판은 1874년에 제작되었으며 아래 지도는 그 이듬해에 제작된 두 번째 판 본이고 그 후, 수 십년에 걸쳐 여러차례 교정,증보되었다. 부기된 예문에는 청나라 각 성(省)의 면적, 인구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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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1875 년에 간행했다는 위 지도에 표시된 청국과 조선의 국경선이 저랬을까?
<청사고/지리지>에도 압록강을 경계로 청과 조선이 접했다고 하는데?
결국 요수.대요수.요하 공부 게을리하면 대한민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병신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도 - 조위 시기 유계지도(괄호 내 한글은 추기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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