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중국에서 정의하는 요하문명 유물 발굴지를 표시한 것이다.

 

 

 

 

                                                   출처: 문명 유적.유물 해설 -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우실하 지음. 2007 소나무

주)

1. 소하서문화 - 기원전 7000~6500 년 신석기 문화, 1987 년 적봉시 오한기 소하서에서 발굴. 2004 년 적봉에서 열린 제1 회

                       홍산문화국제학술연토회`에서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유

국상 발표.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나 장

                       하모도문화 보다 2000 년 이상 앞섬. 동북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흙으로 빚은 인면상 출토됨. 

                                       
2. 흥륭와문화 - 기원전 6200~기원전 5200 년 신석기 문화, 1982 년 적봉시 오한기 보국토향 흥륭하촌. 세계 최고의 옥玉

                       걸이, 중국 국경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신석기 집단 주거지와 해자 및 최초의 용 형상물인 

                       龍, 중국 중원지역에서는 발굴되지 않는 빗살무늬토기 발견.

 

3. 사해문화 -   기원전 5600~ 신석기 문화, 1982 년 부신에서 발굴. 석소룡과 부조 용문양의 도기 파편 발굴, 흥륭와문화

                      발굴되기 전까지는 세계 제1의 옥이 발견되었고 세계 제1의 촌村이였슴.

 

4. 부하문화 -   기원전 5200~5000 년 신석기 문화, 적봉 북쪽 통료시 파림좌기 호얼토향 부하구문에서 장 오래된 복골

                      발굴.

 

5. 조보구문화 - 기원전 5000~4400 년 신석기 문화, 적봉시 오한기 고가와포향 조보구촌 발굴. 최초의 봉황 모양의

                       토기, 방 유적지, 불탄 흔적인 회갱, 최초로 그림이 그려진 채도 발굴.

 

6. 홍산문화 -   기원전 4500~3000 년 동석병용기 문화(2006 년 유국상), 적봉.조양.능원.건창.건평 등. 1906 년 왜 조거

                      용장이 적봉 객라심(?)왕부에 방문 적석총 발견, 1935 년 일본 빈전경작이 학술단을 끌고와 31 곳의 무덤

                      을 발굴하여 인골 29 구, 동물뼈 20 점, 청동기 14 점, 도기 16 점, 옥구슬 380 개, 골기 33 점 채집

                      1000 여 점을 반출해 갔슴. 1943 년 발견된 건평.능원 사이 우하량유적 기원전 3500 년 경 `초급문명

                      회`로 진입되었다고 하였고 1983~1985 년 대대적으로 발굴, 기원전 3500 년까지 올라가는 대형제단.여신

                      묘.총군 발굴. 1979 년 건창(객좌)현 동산취촌에서도 대형 제단 유적 발견

 

7. 소하연문화 - 기원전 3000~2000 년 동석병용기 문화, 갑골문 이전의 원시 상형문자인 도부.도문.도부문자 발굴

 

8. 하가점상층문화 - 기원전 2000~1500 년 청동기시대 문화, 조양시 부근 위영자에서비파형동검 발굴

 

 

- 서기전 75 년 정황을 기록한 <한서/지리지>에 의한 요서.요동.낙랑군 추정 위치

 

 

 

 

- 현 중국전도

 

 

 

 

 

 

- 1751 년 조선 홍문관에서 제도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칭 <백산도>

 

 

 

- 서기 700 년 남북국시기 이후의 추정 판도

 

 

 

 

- 서기 전 300 년 대 이전 판도

 

 

 

한편 중국이 저들의 시조 황제 헌원의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요하문명의 명칭은 잘못 명명된 것입니다.

 

요하문명 유적지 남쪽지역은 위와 같이 서기전 3 세기의 준왕조선 강역과 마한.동예.옥저.진한.진.변진 등의 영역이였고 북쪽은 단군이 통치하던 부여의 강역이였으며 더 북쪽엔 숙신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는 동서 1000 리에 뻗어있다는 백산대맥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서기전 2300 년 경에는 왕검조선의 중심지와 남쪽의 제후국인 청구.낙랑의 땅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명.청과 조선 시기에는 북쪽의 송화강과 남쪽의 소양강이 흐르는 지역이였으니 문명지의 서쪽 변두리 지역을 흘러내리는 요하와는 꽤 거리가 있었던 것이며 요하 하류가 흘러드는 발해와도 관련이 적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요하.발해문명이나 송화.소양문명보다는 백산문명이 적절하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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