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임나4현 위치 추정과 관련한 최춘태의 글 일부다.

 

`` 이러한 현상은 `kara`였던 孤의 음이 변천하면서 그 음에 해당하는 盧를 가져왔고 盧의 음마저 후에 변천하자 樂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처음에 지어진 이름 `kara`를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낙랑의 위치는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으로 확정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나라 무제 유철이 설치한 낙랑군 위치가 지금의 노룡현이라는 주장은 역사지리적 측면에서는 너무 무지무식한 말이다. 역사지리로만 설명해야 할 것을 갑골문 운운하며 천방지축 덤벼서 될 일이 아니다.

 

265 년 조위를 승계한 서진西晉은 서기전 108 년 유철이 설치한 낙랑군 지역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낙랑군의 조선.수성.둔유.혼미.루방.사망 등의 일부 현을 원래 위치에서 서남쪽으로 곧 지금의 란하 최하류인 만灣을 건너 진장성 동단 지점인 요서군 임유현과 비여.영지현 등의 지역으로 옮겼을 뿐이다.

 

- <지리도> 1137 년 송인 황상이 각석

 

 

전한 시기의 요서군 지역은 서쪽 끝에 비여현이, 비여현 서북쪽에 영지성과 고죽성이 있는 영지현이 설치되었고 요서군의 동쪽 끝에 설치된 것이 임유현이다. 요서군의 서쪽 끝에는 난수가 흘러내렸고 동쪽 끝은 백랑수.대요수.염난수.요수.패수.열수 등이 합류하여 이루어진 만灣이였다.

 

즉 비여.영지현이나 진장성 동단.갈석산이 있는 곳은 모두 발원지를 떠나 물음표 ? 모습과 같이 흐르며 중류부터는 어양.우북평.요서 3 개 군 지역을 동남쪽으로 차례대로 흘러내리는 난수 최하류의 동쪽 지역이기는 하나 갈석산이 있고 진장성 동단 지점이라는 서진 시기의 낙랑군 수성현 위치는 비여현이 아니라 임유현이다.

 

또 이 전한 시기의 요서군 비여현 북쪽에 432 년 북위가 북평군 조선현을 설치한 것이고 수나라 시기인 598 년에 비여현을 노룡현으로 개칭하였을 뿐이다.

 

- 1900 년 청국인 양수경이 간행한 <역대연혁험요지도> 북위형세도

 

따라서 고죽성의 孤 갑골문 음이 변천하여 盧와 樂을 가져왔다는 얘기는 갑골문 해석하면서 지명 시기時期 순서도 무시하고 관련 없는 단어를 무리하게 연관짓는 아전인수격 해석이고 편향된 주장으로 보면 될 것이다.

 

게다가 최춘태가 지금의 노룡과 산해관 지명과 위치를 전한부터 청 멸망까지의 노룡.산해관 위치라고 인식하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지금의 노룡.산해관 지역은 마한 지역이였다. 이후 백제가 차지한 후 후삼국.고려 시기에는 호남으로 또 나주.전주 등이 설치된 곳일 수 밖에 없다.

 

- 1612 년 명국인 모원의가 편찬한 <무비지>에 실린 <조선도>

 

 

위 <조선도>가 묘사한 범위는 아래의 적색 삼각 실선 지역이다.

 

 

이곳의 호남.나주.전주 등의 지명은 이조선 초기 도읍을 송도.개경에서 동남쪽으로 2000 여리 떨어진 한반도 중앙으로 옮길 때 아래 모사도의 청색 실선과 같이 한반도 남서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이조선의 자체 지명 이동 성격과는 판이하게 그로부터 500 여 년 후인 1873 년 경 일본 명치왕.서향융성의 하수인인 일본 육군참모부는 위 모사도의 적색 실선들과 같이 청국 시기의 란하 유역 동쪽의 모든 지명, 대표적으로는 남쪽의 노룡.산해관 등은 동쪽으로 500 여 리 쯤, 직예성에 속한 승덕부의 열하구.조양.적봉 등의 현은 동북쪽으로 최소 300 리 최대 1500 여 리 쯤, 봉천성.부의 요양주와 심양 승덕현 곧 심양과 철령 등은 동쪽으로 대략 2000 여 리 쯤 이동.표시한 조작지도를 간행.홍보하였다.

 

일본참모부는 지리 조작질의 멍에를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 명.청 시기의 정사 지리지 기록에 최대한 맞추었고 결국 이조선의 평양 곧 고려의 서경이였으며 준왕조선의 왕검성과 낙랑군 설치 위치도 지금의 한반도 평양 지점으로 낙착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조작.이동의 근간 논리는 아래와 같이 청국 시기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을 란하 1 물길로 변조한 것이다.

 

 

- 1832 년 청국인 이조락 등이 간행한 <황조일통여지전도>를 1865 년 일본에서 재간행했다는 조작도 <황조일통여지전도- 이를 `왜황도`라 하겠다>

 

결국 정춘태의 갑골문 음운학적 해석이라는 고.노룡.낙랑군 3 곳의 지명 연원 해석과 추정 위치는 잘못이기도 하려니와 일본명치왕이 조작하여 만든 식민사관과 일본의 지리 조작 결과 거저 얻은 땅을 지키려는 몸부림에 불과한 중국의 동북공정을 홍보하는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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