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그 증거물인 일본 육군참모부가 간행한 공식관찬지도 <아세아동부여지도>다.
간행 시기는 1875 년이다.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 연구/고지도
일본이 패망한 후 1948 년 건국된 중공은 위의 조작.기획이 공식적으로 실행된 1934 년 간행 <만주국지도> 표시에 근거하여 고대부터의 요하가 지금의 요하였고 청 시기의 국경이 압록강까지였다며 지금의 압록강까지 점거하였다.
그러나 1875 년 당시 청국과 이조선의 국경은 <아세아동부여지도> 표시처럼 지금의 요녕성 영역만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청국 책문 동쪽에 공지空地 120 리가 있었고 그 동쪽은 압록강이였다. 즉 위 <만주국지도> 표시와 같이 당연히 1 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당시 청국의 동북 지리를 엉터리 <아세아동부여지도>에 추기하면 아래와 같다.
위 엉터리 <아세아동부여지도>에 추기한 것과 같이 백두산이 중국 요녕성 서쪽 지금의 노로아호산맥 중에 있었음은 이조선 선학 이익.이중환 등도 전했다.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선 것과 같다. 그리고 대마도와 제주도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했다고 하니, 이는 곧 지관들의 일반론이다.
<성호사설/천지문> 이익(1681~1763)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이다. 해亥 방향에 앉아서 사巳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그런고로 예전부터 중국과 친해 왔다. 그러나, 땅이 좁고 물이 젓어 위인을 낳지 못했다.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 그리고 동호와 여진족이 모두 중원을 제패하고 황제가 된 일이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못해서 주어진 영토만 지키며 감히 뜻을 품어 보지 못했다`라 했다 .
<택리지/복거총론,산수총론> 이중환(1690~ )
<후기 조선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37~38 쪽
또한 이조선과 청국 국경 지역을 정확하게 묘사한 고지도도 전해진다.
- 무제목 고지도
이조선 영조 26 년 (1751) 홍문관에서 간행했다는 <해동지도>에 실린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보물 제 1537 호로 지정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원본일 것으로 추정함.
출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산해관.성경.흥경.길림오랍.영고탑>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슴
위와 같은 연유로 단재 신채호 선생은 고대의 요하는 란하였다고 한 것이고 조금 과장되었지만 연수 계인경 선생도 <환단고기/북부여기> 본문에 자신의 지리 인식을 삽입하여 패수는 금 란하라 하였던 것이다.
즉 아래 흑색 타원형 표시 내의 청 시기 직예.봉천.길림.흑룡강 4 성 지리와 이조선의 압록강.백두산.평양 등의 지리가 동북쪽으로 크게 확산.이동되어 지금과 같이 적색 타원형 지역에 재배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지금의 중국 하북.요녕.길림.흑룡강 등 4 성 지역의 지리는 1875 년 일본이 기획.조작한 지리가 한국에게는 불행하게도 현실화된 것 뿐이다.
따라서 일본 총리 石破茂.이시바시게루는 청국 동북 국경 지리를 변조.이동시킨 반역사행위에 대하여 대한인에게 사죄해야 하고, 중국 주석 習近平.시진핑은 대국으로서의 대의와 국제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마땅히 지금의 요녕성과 길림성 남부 땅을 반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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