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일국 명치3걸 중 우두머리격인 서향융성은 1872 년부터 육군참모국을 동원하여 청국의 동북 국경 지역을 흐른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을 아래와 같이 란하 1 물길로 삭제.연결하고 이동.위작한 엉터리 습작지도를 간행.선전하였다.

 

 

 

동시에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의 모든 지류와 3 물길 본.지류 유역의 모든 지명까지도이동.위작하였다. 그 변조.이동.위작의 증거가 아래의 <아세아동부여지도>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1875 년 일본 공식관찬지도, 육군참모부 간행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 연구/고지도/아세아동부여지도

 

그러면 청국과 이조선의 국경선이 지금의 화국 요녕성 영역만큼 떨어져 있었는가?

아니다.

아래의 성경.압록강 지역의 부분도는 강희년간(1662~1722)에 청국인 채방병이 각석했다는 <대청광여도>를 1785 년 섬나라 일국인 장구보적수가 교정했다는 지도, 나는 <왜청도>라 하는데 이 고지도에도 청국과 이조선의 국경선은 청국의 봉황성 책문과 압록강 사이 지역 접계.묘사되어 있다.

 

 

한편 청 시기의 황하는 직예성 다륜 북쪽에서 발원하여 적봉직예주 동쪽으로 지나 건창현 북쪽, 조양부 북쪽으로 지난다고 하며 봉천성 신민부 진안현 기록에는 동사하가 직예성 지역 수동에서 흘러와 남쪽으로 흘러 노(합)하를 받아들인 후 봉천성 금부주 반산구로 흘러가는데 남사하라고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즉 아래의 현 화국전도에 추기한 황하여야 한다.

 

 

과연 황하가 위와 같이 흐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왜일까?

녹색 실선으로 표시한 영문자 y 모습의 지금의 칠로도산맥과 노로아호산맥 때문이다. 두 산맥은 이어진 분수령이기 때문에 지금의 노합하.란하.청룡하.대릉하 등과 같이 두 산맥을 관통하여 흐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조선 시기 북경에서 명 시기 요동도사사 정요중위 요양현까지는 1700 리, 청 시기 봉천성 봉천부 치소인 성경 심양 승덕현까지는 1470 리라고 저들 정사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조선 연경행 사신들의 연행기록에는 북경에서 압록강까지를 1990 리~ 2000 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결국 현 <화국전도>에 표시된 란하 이동의 지리는 청 시기의 지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즉 1684 년 청국인 동병충.손성 등이 <성경지>를 편찬한 이후 1778 년 아규 등에 의해 최종 증보.수정된 <성경통지>에 실린 아래 <성경지여전도>의 성경 심양 승덕현에서 서남쪽으로 지금의 북경까지는 1470 리여야 하는데, 그 승덕 위치는 위의 현 <화국전도>에 표시된 지금의 요하 하류 동쪽 지금의 심양이 아니라 지금의 란하 중류에 표시된 2 개의 승덕 중 동남쪽에 표시된 작은글자의 승덕이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란하 부근의 청.명 시기는 물론이고 그 이전 원.금.요.당.수.위.한 시기의 지리와 역사는 아래와 같았다.

 

- 이조선.고려 강역

 

- 3 국 강역

 

- 전.후한의 유주 8 군

 

그러면 위의 모사도에 한반도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적색 실선을 연결한 해亥.정북正北 표시는 무엇일까?

 

- 무제목 고지도, 가칭 <백산대맥도>

이조선 영조 26 년 (1751) 홍문관에서 편찬했다는 <해동지도>에 실린 것으로 추정

소장.출처: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방향 표시다. 즉 해亥는 12 간지의 12 번째이고 방향으로는 시계의 시침 11 시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익.이중환 선생이 이땅의 지리가들 말이라며 전한 백두산의 좌향이라는 해좌사향을 표시한 것이니 이조선 당시의 백두산 위치는 지금의 서울에서 서북 방향이며 정확하게는 11 시 방향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서요하도 흑룡강이라고 인식하였고 지금의 요하와 중류의 동쪽 지류 동요하가 합류되는 지점도 바다라고 인식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래는 위 <백산대맥도>의 아래부분에 지금의 한반도 북부 지역을 첨부하여 변조한 고지도는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라 하며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2007 년 12 월 31 일 보물 제 1537 호와 -1 호로 지정했다고 한다.

 

 

 

 

결국 위  대한민국 보물지도와 같이 이조선 시기의 압록강.백두산을 지금의 압록강.백두산으로 인식하면 서기전 108 년 서쪽 고대국 한나라 무제 유철이 설치한 낙랑군 위치는 지금의 요동 해성부터 동남쪽으로 한반도 평양까지의 지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왕성이 있는 지금의 서울에서 백두산.선춘령이 시계의 11 시 방향인 해亥일 수 없기 때문에 거꾸로 표시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식민사관의 핵심 논리이고 또한 동북공정 추진하는 화국이 꽁꽁 숨겨야만 하는 지리다.

 

나는 위와 같이 방향 표시를 거꾸로 표시한 엉터리 지도 제작질을 이조선 선조가 했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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