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일까?

 

왕검성.낙랑군 위치를 비록 중국 하북.요녕성 경계 지역인 지금의 갈석.산해관 지역에서 찾는다 하더라도 윤내현이 인식하는 지리는 일본이 변조.이동 조작한 지리 곧 <만주국지도>나 <만주국지도>를 그대로 베낀 현 <중국전도>의 표시대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즉 1934 년 간행된 <만주국지도>와 만주국지도를 복사한 아래 추정도 표시와 같은 현 <중국전도>를 근거로 2000 여 년 전 요동군을 흐른 1250 리 길이 대요수를 지금의 요하로 인식하고 그 대요수.요동을 기준으로 삼국.고려.이조선의 지리를 재단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 조선역사를 축소하기 위해 만든 조작.식민사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조작 결과 중국으로서는 역사적으로 동시에 현실적으로 강역이 확대되었고 그 확대된 땅 곧 장물땅을 지키기 위한 작업인 동북공정의 지리 논리를 그대로 수긍.홍보하는 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윤내현.이덕일이 인식하는 지리

 

 

 

하지만 <사기> 부터 <청사고>까지 약 2000 여 년 동안 간행된 25 개 정사 지리지와 같은 기간 간행된 정사급 지리지 및 송.명.청 시기 간행된 고지도 등을 검토하면 약 2000 여 년 동안의 지형과 지리는 아래와 같이 일관되었었다.

 

 

 

 

즉 한.당 시기의 대요수는 송.거란 시기부터 청국이 멸망한 1911 년까지는 황하로 개칭.기록되었고,

한.당 시기 염난수라 불린 물길도 송.거란 이후부터 요하로 개칭되었었다. 

 

결국 삼한을 통일한 신라나 고려 및 이조선의 강역은 아래와 같이 동서 폭 2000 리, 남북길이 4000 리에 이르렀었다.

 

 

또한 전국시대 연국 장수 진개가 침입하기 전의 단군부여나 제후국 조선의 서쪽 경계는 당연히 아래 추정도의

대요수.황하 부근까지였고 그 훨씬 이전 서기전 2333 년 개국한 왕검조선의 강역 또한 아래와 같이 지금의 적봉.능원.승덕.건창 사이 지역으로 추정해야 하는 것이다.

 

- 서기전 2333 년 왕검조선 추정 강역

 

 

- 서기전 30 년 경 단군부여 강역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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