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전 역주 <환단고기/북부여기> 원문 중에는 패수금조하浿水今潮河라는 구절이 있다.

즉 유방이 세운 한나라 동북쪽 끝 경계가 패수인데,

그 위치를 현재 북경 북쪽에 표시된 밀운 동쪽으로 흘러내린 조하라 하였다. 

 

 

하지만 계연수가 엮고 임승국이 역주한 <환단고기/북부여기> 원문에는 패수금란하浿水今欒河로 출간되어 있다.

즉 독립운동가인 계연수는 자신의 지리 인식을 비록 <환단고기/북부여기> 본문에 잘못 넣은 실수는 저질렀지만 대체로 정확한 인식을 가졌고 다행스럽게도 임승국은 원문 그대로 출간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계연수가 독립운동한 같은 시기의 신채호는 뭐라 했을까?

고대의 요수는 란하이고 패수는 해성의 헌우락이라 했다.

 

 

 

위 3 인의 역사지리 인식 중 신채호의 인식이 가장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중국 한 시기부터 청 시까지의 지리가 위 3 개 모사도와 같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위 3 개의 모사도는 일본명치왕군부가 란하황하.요하.압록강 등을 변조.이동시킨 후의 조작지도이고,

중국 한 시기부터 청 시기까지 약 2000 여 년 동안의 지리는 아래와 같았었다.

 

 

 

위 추정도와 같이,
1910 년 중국으로 망명한 신채호가 건넌 압록강은 지금의 압록강이 아니라 현재 중국 요녕성 서쪽 지금의 란하로 흘러드는 동쪽 지류 지금의 청룡하였다. 지금의 청룡하는 2000 여 년 전 전한 시기에는 낙랑군 탄열현을 경유한 820 리 길이 열수였으며 고구려.고려 시기의 살수였고 이조선 들어 압록수로 개칭되어온 물길이다. 

1920 년 쯤 <조선상고문화사>를 저술한 신채호가 `고대의 요하는 란하`, `패수는 해성의 헌우록`이라 다소 혼란스런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도 그 당시 일본명치왕군부 놈들이 당시까지의 란하를 변조하여 황하.요하로 임의 연결하고 황하 요하를 동쪽 2000 여리 밖으로 이동시켜 지금의 서요하와 요하로 표시한 후 압록강도 당연히 지금의 위치로 옮겨 결국 조선의 역대 강역을 크게 축소시킨 습작지도를 대대적으로 간행.홍보 중이였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안경전 등이 저러한 일본의 얄팍하고 교활한 지리 조작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쨋든 일본이 이동.조작하고 중국이 암묵하고 있는 현 지리를 활용하여 고대 지리를 비정하면서 지금의 조하를 패수로까지 주장하고 왕검조선의 3 경 중 하나를 지금의 당산까지로 비정하려는 의도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인을 우매화하려는 현 한국.일본.중국역사학계의 역사지리 논리보다 더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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