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월 고침

마. 고려 압록수

 

한국인은 모두 고려.이조선 시기의 압록수가 지금의 압록강이라고 이해한다. 인하대고조선 연구소 윤한택 등은 아래  <삼국유사/흥법> 순도조려 기록을 근거로 지금의 요하가 고려 시기의 압록수라고 주장한다. 

 

按麗時都安市城 一名安丁忽 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淥 今云安民江

 

또한 고려 천리장성도 지금의 요동 철령 부근에 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고려 압록수가 지금의 요하이고 고려의 천리장성이 지금의 철령을 지났을까? 아래는 고려 말 명국에서 철령위를 압록강 가까이 설치하는 것에 대한 권근의 진정 내용이다. 

 

권근의 철령.쌍성 관련 진정전 陳情箋 <동문선 권40>  
신(권근)은 아룁니다.
 홍무 21 년 2 월 15 일에 배신 문하평리 설장수가 경사에서 돌아오니, 호부에서 발행한 성지를 공경히 받들었습니다. `그 철령의 이동.이북.이서가 원래 개원에 속한 것이니 소관 군민은 그대로 요동에 붙이도록 하라.`하였으니 신은 일국의 신민과 더불어 놀랍고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여 우러러 소회를 아뢰는 것입니다.
...

말씀하신 철령 이북은 문.고.화.정.함 등의 여러 주를 지나 공험진에 이르기까지는 자고로 본국의 땅이였는데, 요 건통 7 년에 동여진사람들이 난리를 일으켜 함주 이북의 땅을 빼앗아 차지하므로 예왕이 요국에 고하고 토벌하기를 청하여 군사를 보내어 잃은 땅을 회복하게 됨에 함주.공험진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원나라 지정의 초기 무오 년간에 이르러 몽고 보지관인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수복할 때에, 본국 정주 반민 탁청과 용진현 사람 조휘가 화주 이북의 땅을 가지고 가서 항복하면서 지금 조정의 요동 함주로 부근인 심주에 쌍성현이 있음을 들어 알고 본국 함주 근처인 화주에 옛날에 쌓았던 조그마한 성 둘이 있으므로, 인하여 모호하게 주청하여 드디어 화주를 쌍성으로 잘못 일컫고, 조휘를 쌍성총관으로 탁청을 쌍성천호로 삼았는데, 지정 16 년에 이르러 원조에 주달하여 상항의 총관.천호 등의 직을 혁파하고 화주 이북의 땅을 다시 본국에 소속되게 하여 지금까지 주현의 관원을 제수하고 인민을 관할하고 있사오니, 반적으로 말미암아 침삭당했던 땅을 대국에 호소하여 다시 찾아낸 것입니다. 지금 철령 이북.이동.이서는 원래 개원로에 속한 것이니, 그대로 요동에 붙이게 하라는 명을 공경히 받들어 보았으나, 이 철령의 산은 왕경과 겨우 3 백리의 거리이며, 공험의 진은 변방의 경계로 한정된 것이 한두 해가 아닙니다. ...

 

 

즉 명국 주원장이 설치한다는 철령위 위치가 고려 영역인 함주 부근 화주의 쌍성이니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명 주원장은 5 년 후 심주의 쌍성현인 옛 은주땅으로 옮겼다. <명사/지리지> 요동도사사 철령위 기록이다.

 

鐵嶺衛 洪武21年3月以古 鐵嶺城置 26年4月遷於古嚚州之地

 

그런데 주원장이 처음 설치한 철령위는 곧 고려 땅 화주의 쌍성이였고 화주는 왕경 곧 서경과는 300 리 떨어진 곳이라 하니 마땅히 고려 압록수 변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옛 은주땅으로 옮긴 철령위 서쪽에는 요하가, 동쪽에는 혼하가 흘렀으니 결국 고려 압록수는 혼하일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이 혼하를 일연국사는 요수라 인식한 것이며 실재 <한서/지리지> 기록으로는 현토군 고구려현을 흐르는 요수였다. 한편 일연국사 설명과 같이 고구려가 안시성에 도읍한 적은 없다. 

 

따라서 고려 당시의 요하는 전한 시기 현토.요동 2 개 군을 경유하는 2100 리 길이 염난수였고 지금의 란하 중.하류와 정북쪽 상류이기 때문에 고려 압록강도 지금의 평천을 흐르는 지금의 폭하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고려의 함주.화주.문주.고주.정주 등과 공험진을 비롯하여 윤관이 쌓았다는 영주.웅주.복주.길주 등의 위치도 아래와 같이 지금의 노로아호산맥 북쪽 지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명사/지리지> 요동도사 정요중위에 설명.기록된 혼하와 태자하는 고구려에서도 서압록.동압록이라 하였음을 <삼국사기/고구려본기> 고국천왕 기사에서 추단할 수 있다.

 

十三年 ... 令汝四部 各擧賢良在下者 於是四部擧東部晏留 王徵之 委以國政 晏留言於王曰 微臣庸愚 固不足以參大政 西鴨淥谷左勿村乙巴素者 琉璃王大臣乙素孫也 性質剛毅 智慮淵深 不見用於世力由自給 大王若欲理國 非此人則不可 王遣使以卑辭 重禮聘之 ...

13 년(서기191년) ... 너희 사부는 각기 현량한 재하의 사람을 천거하라. 이에 사부는 모두 동부의 안류를 천거하였다. 왕은 불러들여 국정을 위촉하니 안류는 왕에게 말하기를 `소신은 용렬하고 어리석어 진실로 대정에 참여하기 부족합니다. 서압록곡 좌물촌에 을파소란 사람은 유리왕의 대신 을소의 손자로서 성품이 굳세고 지려가 깊으나 세상에 쓰여지지 않으므로 농사에 진력하여 살고 있으니 대왕이 만약 나라를 다스리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안될 것입니다.`하였다. 왕은 사신을 보내어 겸손한 언사와 중한 예로써 맞이하여 ...

 

결국 권근으로부터 250 여 년 전인 고려 예종 시기 서압록.동압록의 발원지인 개마대산을 넘어 동북쪽 끝에 위치한 선춘령까지의 지역을 윤관.오연총.척준경 등이 17 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쫓아내고 함주.영주.복주.길주.영주.공험진 등 9 성을 쌓았던 것이다.

 

아래는 명국 말 모원의가 편찬한 <무비지>에 실린 <조선도>다.

 

- <조선도>

주) 명대 모원의가 역대 군사관계 서적 2,000여 종을 모아 1621년(천계 1)에 완성했다. 〈병결평 兵訣評〉 18권, 〈전략고 戰略考〉 31권, 〈진련제 陳練制〉 41권, 〈군자승 軍資乘〉 55권, 〈점도재 占度載〉 96권으로 이루어져 모두 240권이다. 각 부분마다 그림과 해설이 있으며, 사료가 매우 풍부하다.( 출처:다음백과)

 

 

아래는 이해하기 쉽게 추기한 것이다. 

 

 

 

위 <조선도>에도 요양.심양 동쪽에 압록강이 표시되어 있으니 곧 명국의 혼하다. 결국 위 <조선도>의 묘사범위도 아래 적색 실선 삼각형 지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평대군이 요택.요하를 건너 우장.해성을 지나 도착한 요양 남북쪽 지역을 흐른 태자하.혼하는 고구려.고려 시기에는 동압록.서압록으로 불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이조선 초기 명국과의 국경은 혼하에서 동남쪽에 있는 옛 개마대산 산중에 설치한 연산관이 되었고 이조선의 압록강 역시 연산관의 동남쪽에 흐르는 옛 낙랑군 지역을 흐른 820 리 길이 열수로 바뀌게 된다. 결국 고려 압록강 지역에 설치된 모든 지명도 동남쪽으로 450 리 쯤 옮겨졌고 화주.고주.문주.함주 등은 사라졌고 정주.귀주.인주 등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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