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월 고침

 

 

 

 

한국 땅에서 일제가 만든 대조선 역사관 곧 식민사관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0 여 년 전인 1910 년대 부터이고 단재 신채호와 연수 계인경 등이 있었다. 2000 년대 들어서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한다며 부산을 떨었지만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의 논리는 여전히 강력하다. 비판과 대응은 커녕 식민.공정의 지리 논리에 흠뻑 젖은 자들이 학계를 좌지우지하여 건전한 논쟁마저도 훼방질하는 교활한 술수를 부리고 있다. 

 

그나마 있는 논쟁도 낙랑군 위치나 임나가 가라라든가 임나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었다는 다소 쌩뚱맞고 좁은 지역의 문제였고 동시에 고대에 한정시켰다. 하지만 훨씬 큰 강역의 문제이며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를 거쳐 현재의 문제다. 즉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것이 식민사관보다 더 시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인데 사실 그렇지 못하고 있다. 동북공정 논리는 식민사관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동북.식민의 논리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다. 즉 요하문명, 환웅천왕의 고조선과 단군 왕검이 세운 조선 곧 왕검조선에 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강역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더 크게 보아야 한다. 서쪽 화국인들의 시조라는 황제 헌원이 일군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요하문명부터 따져보아야 하고 1945 년 일본의 패전으로 인한 대한민국 영토가 확정된 국제회의 내용도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해결책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눈만 제대로 뜨면 주위에 널려있다.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나 역사학계가 검증해야 할 것을 모르쇠한다는 것이다. 고구려.고려.이조선 시기는 차치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100 여 년 전 대한제국의 국경마저도 정확하게 인식하는 자가 없다. 다산 정약용은 <강역고>에서 낙랑군이 평양에 설치되었다고 하였는데 역사가들조차도 그 평양을 한반도 평양을 말한다고 단정하며 또한 연경에서 압록강까지 2100 리라 하였는데 그 압록강도 지금의 압록강을 말한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맞춘다. 극히 무지무식한 짓거리다. 지금의 신의주와 북경 사이의 거리가 2100 리 일까?

 

이러한 지리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아래는 출처 불명한 산해관에서 의주까지의 사신 로정을 묘사한 <사행도>다.

 

- 사행도

 

 

한.중.일 3 국 역사학계는 위 <사행도>의 묘사범위를 지금의 산해관부터 지금의 의주까지라고 주장한다.

 

- 모사도1

주) 위 모사도는 현 <중국전도>에 표시된 물길만을 추출하여 표시한 것임.

 

 

하지만 <사행도>는 아래와 같이 지금의 란하 중.하류에 있었던 청 시기의 산해관.심양과 이조선.대한제국의 의주 지역을 묘사한 것이다.

 

- 모사도2 

 

 

 

2021 년 6 월 (사)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성삼제는 섬 일국에서 한 언론인으로부터 “우리 일본이 조선 식민통치하기 위해서 역사를 조작해놓은 게 있는데 당신네들, 한국이 해방되면 당연히 복원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60년대, 70년대, 80년대가 되어도 그대로 있더라.”며 “우리 일본을 탓하기 전에 당신네들 꺼를 먼저 봐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이 조작한 것을 밝혀냈다는 소식은 없다. 

 

두 개의 모사도를 비교하면 조작이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요하 이동.위작이다. 즉 1932 년 만주국이 건국될 때까지도 산해관.심양.의주는 지금의 란하 하류 유역에 있었는데 1934 년 간행한 <만주국지도>부터는 산해관은 동쪽으로 300 여 리, 심양은 동쪽으로 2000 여 리, 의주는 동남쪽으로 3000 여 리 씩 이동.위작 표시된 것이다. 

 

그렇다고 딱부러지게 <만주국지도> 표시부터라고 해서도 안된다. 조작의 전조는 1872 년부터였다. 일국 육군참모국은 조선.청국 국경지역으로 밀정을 파견하여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1875 년 <아세아동부여지도>를, 1876 년에는 <조선전도>를 간행하였다. 하지만 사실 지도가 아니라 조작한 엉터리 지도였다. 그러면 그 시기에 그렇게 무지막지한 지리조작을 감행할 결행권자는 누구였을까? 나는 명치 3 걸 중 급진적 정한론자인 서향융성일 것이라 판단한다.  

 

결국 이 글은 섬 일국이 어떻게 지리를 조작했는지를 밝히는 내용이며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문화사>에서 `고대의 요수는 란하`, `패수는 해성의 헌우락`이라는 두 구절을 석명하는 글이다. 선생의 글에서는 아쉽게도 지금의 란하가 왜 요수.패수인지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가 없다.  

 

결국 1656 년 효종의 아우 인평대군이 이조선 대신들의 치죄를 번복하도록 주청하는 진주정사의 임무를 띄고 연경을 다녀오면서 남긴 <연도기행>을 찾았고 이를 통해서 단재의 짧막한 두 구절이 사실임을 밝히려고 한다. 

 

보통 수준의 상식있는 대한인이라면 내 논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는 이들의 상식을 믿어 보고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