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월 고침

 

1/ 글을 시작하며

 

한국 사회는 100 여 년 전부터 식민사관 관련한 논쟁이 끓이지 않았고 20 여 년 전부터는 동북공정에 대응한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지금은 합당한 결말이 났을까? 아니다. 논쟁은 커녕 식민사관.동북공정 논리에 푹젖은 자들이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하고 논쟁도 못하게 갖은 술수를 부리고 있다. 

 

그러한 논쟁의 첫째는 아마도 낙랑군에 관한 것이라 본다. 즉 지리 문제다. 환웅천왕의 신시와 단군 왕검이 세운 조선 곧 <삼국유사/기이> 항목의 `고조선.왕검조선`을 신화.전설로 치부하려는 짓은 둘째로 해도 될 것이다. 문명 시대의 유적.유물이 잘 보존되기 때문이고 지리 문제가 석명되면 신화.전설은 당연히 역사로 승격되기 때문이다.

 

어쨋든 지리 문제에서 낙랑군 위치는 한.중.일 3 국 역사학계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전투장이라 할 수 있겠다. 한.중.일 3 국 역사학계는 모두 서기전 108 년 한나라 무제 유철이 우거가 점거하고 있던 조선땅을 공격.점거하고 설치한 낙랑군 위치를 한반도 평양지역이라 하지만 이는 조작질이고 사기질이며 등신질의 결정판이다. 임나일본부도 낙랑군 한반도 평양설 때문에 주장되는 지리 문제의 일부분일 뿐이고 중국 시조 황제 헌원이 일군 문명이라는 요하문명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문제는 한국인으로서는 표면적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일 수 밖에 없는데 유독 역사를 공부하고 강의한다는 한국사학계는 그러한 자존심마저도 없는 것 같다.   

 

그러면 과연 해결책은 있을까? 

 

당연히 있고 눈만 뜨면 주위에 널려있다. 문제는 한국사학계가 온통 사시斜視이고 반드시 검증해야 될 국경 지리를 일체 검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고구려.고려.이조선 시기는 차치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100 여 년 전인 대한제국의 국경마저도 정확하게 인식하는 자가 없다는 점이다.

 

정약용이 <강역고>에서 언급한 평양을 한반도 평양이라고 단정하는 한심한 짓거리가 그것이다. 또 이조선 사신들이 500 여년 동안 오간 의주.북경 사이 2100 리 거리를 어떻게 지금의 신의주.북경 사이의 거리라고 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결국 북경.의주 사이의 정확한 지리 인식만이 낙랑군.임나일본부.요하문명 등으로 표출되는 식민사관.동북공정 논리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지리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아래는 출처 불명한 산해관에서 의주까지의 사신 로정을 묘사한 <사행도>다.

 

 

한.중.일 3 국 역사학계는 위 <사행도>의 묘사범위를 지금의 산해관부터 지금의 요하 지역이라 이해한다. 

 

주) 위 모사도는 현 <중국전도>에 표시된 물길만을 추출하여 표시한 것임.

 

 

하지만 <사행도>는 아래와 같이 지금의 란하 중.하류에 있었던 청 시기의 산해관.심양과 이조선.대한제국의 의주 지역을 묘사한 것이다. 

 

 

 

결국 이 글은 신채호가 `고대의 요수는 란하`, `패수는 해성의 헌우락`이라 한 단 두 구절을 석명하는 글이 되겠다. 계연수도 비록 본.지류를 혼동하였지만 동.서 방향으로는 절대 고정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란하를 패수라고까지 주장하였다. 두 선생은 아쉽게도 지금의 란하가 왜 요수.패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란하가 왜 요하인지를 이글을 통해서 석명하려 한다.

 

1656 년 효종의 아우 인평대군은 이조선 대신들의 치죄를 번복하도록 주청하는 진주정사의 임무를 띄고 북경을 다녀오면서 <연도기행>을 남겼다. 그 기행문 중 귀로 로정을 통하여 당시의 요하가 지금의 란하인지를 밝히려 한다. 

 

보통 수준의 상식있는 대한인이라면 필자의 논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는 이들의 상식을 믿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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