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동북공정을 비판하면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역사학계가 해석한 우리 역사에 기초하여 화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동북공정은 물론이고 식민사관과 한국사조차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본말이 전도된 대단히 잘못된 시각이다.
물론 화국이 한국의 잘못된 역사 해석을 참고하였을 것이고 자신감도 얻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국 내의 잘못된 역사 해석 곧 식민사관이 동북공정의 발단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동북공정은 섬나라 일국이 지금의 화국 요녕성 영역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서북 4 도 곧 평안.함경.황해.강원 땅을 지금의 압록강 남쪽으로 축약시킨 결과 일국 패전후 광복된 한국이 서북 4 도를 찾을 정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차지한 땅 곧 장물을 영원히 지키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즉 일국의 지리 조작을 밝히지 못한 한국사학계의 안일한 역사 인식이 동북공정 추진의 원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화국은 1949 년 건국 당시 일국의 지리 조작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비양심적이게도 일국의 지리조작을 암묵하고 대한제국의 서북 4 도 땅이였던 지금의 요녕성 땅을 마치 고대부터 제것인 양 차지하였다.
이러한 지리 조작의 조짐은 일국 서향융성이 1872 년부터 기획.실행하여 1875 년 일국공식관찬지도라는 엉터리 조작지도 <아세아동부여지도>와 1876 년 지금의 압록강 남쪽으로 축약된 엉터리 조작지도 <조선전도>를 간행.홍보하였고 청국도 1900 년 양수경이 <역대연혁험요지도/요지리도>를 통하여 일국의 지리조작 핵심인 발원지에서 동남류하여 지금의 란하 중류로 흘러야 하는 황하潢河를 발원지에서 정동류하는 당시의 흑룡강을 대체하여 지금의 서요하로 인식토록 그려 넣었다. 결국 1980 년과 1992 년 간행된 엉터리 <중국역사지도집>은 1900 년 양수경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 1865 년 일국에서 재간행했다는 <황조일통여지전도>
주)
1. 원래의 <황조일통여지전도>는 1832 년 청국인 이조락 등이 간행했고 위의 <황조일통여지전도>는 1865 년 섬나라 일국에서 재간행했다는 기만용 조작 지도이다.
2. 청국 정사인 <청사고/지리지>에 의하면 황하는 다륜 북쪽에서 발원하여 동남류하면서 청 시기 직예성 적봉직예주 동쪽, 조양부 건창현 북쪽, 조양부 북쪽을 경유한 후 봉천성 신민부 진안현 서쪽으로 흐른 후 크게 꺽이여 금주부 반산구를 흐른 동사하로 합류하였다. 결국 지도상으로는 요하의 하류로 흘러든 서쪽 지류일 뿐이다. 그런데 황하潢河를 황하 중류 승덕 지점을 기준하여 동북쪽으로 대략 3000 여 리 떨어져 흐르는 별개의 물길이며 당시 흑룡강성을 흐른 흑룡강으로 인식토록 발원지에서부터 정동류로만 흐르게 위작한 엉터리 지도다. 또한 황하 중류의 남쪽 짧은 지류에 불과한 노합하도 덩달아 변조되어 큰 물길로 표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정상적인 란하.황하.요하 유역을 묘사한 부분지도에서 황하 본.지류만을 약간 변조작하여 마치 지금의 란하.서요하.요하를 묘사한 부분지도로 오인토록 기획한 엉터리 지도일 뿐이다.
그러면 2002 년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핵심적인 비양심적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당연히 고대부터 요녕성 땅은 화국 땅이였었다고 주장해야만 한다.
즉 화국 두번째 정사 <한서/지리지>부터 25 번째 정사 <청사고/지리지>까지 설명.기록된 대요수.염난수 곧 송.거란 시기부터 개칭된 황하.요하에 대해 질의해보라. 당연히 지금의 요하라고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이 고대의 요하는 란하라고 또 연수 계인경 선생이 패수는 금 곧 1910 년대의 란하라고 교시한 것처럼 고대 뿐만이 아니라 1910 년대에도 요하는 지금의 란하였고 패수는 지금의 란하 중류의 동쪽 작은 지류였기 때문에 환웅천왕의 고조선부터 단군 왕검이 세운 조선 곧 왕검조선 및 단군의 제위를 물려 받은 단군부여.고구려.백제.통신라.진국.고려까지의 서쪽 국경선은 모두 지금의 란하 중.하류와 정북쪽 상류 지류였고 이조선.대한제국의 서북쪽 국경선은 란하 하류의 동쪽 지류인 지금의 청룡하까지였었다.
즉 화국인들이 황하문명을 버리면서까지 자신들의 시조 황제 헌원이 일으킨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요하문명이 조선문명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국은 청국 시기의 요하를 지금의 요하라 답변할 것이지만 그 답변은 비학문적일 뿐만 아니라 도둑질한 자의 비양식적인 저속한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대한인은 대한제국의 서북 국경선이였던 당시의 압록강 곧 지금의 란하 하류 동쪽 지류인 지금의 청룡하까지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며,
그 전제는 역사지리를 정확히 파악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화국 역사학계의 궤변을 무너트릴 수 있고 일국의 지리조작 곧 식민사관의 핵심 논리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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