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자유발행제 역사교과서를 발간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교과서 자유발행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수준을 교과서라 이름붙친 것은 과욕이고 명백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내용은 부실한 것을 너머 한국사 서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식민사관.동북공정의 실체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외려 선전.홍보하였는데 이런 내용을 어떻게 교과서라 할 수 있나?  

 

그 실수의 첫번째는 고조선 중심 영역을 지금의 요동 본계 또는 요양 부근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즉 윤내현 주장을 받아들였는지 요동.낙랑 2 군 위치를 지금의 란하.산해관 부근으로 추정하고 고조선과 고구려 중기까지의 중심 영역을 지금의 요동 지역이라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이나 고려 서경, 이조선의 평양부가 한반도 평양이라는 결론일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정한론자인 일국 서향융성이 1873 년경 부터 기획.실행한 대조선 역사지리 축소.조작의 핵심 논리이고 소위 식민사관이라 불리는 중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의 역사를 한반도에 쑤셔넣어 대한인의 독립의지를 꺽어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 교과서 집필진은 식민사관이 무엇인지 또 동북공정 궤변이 무엇때문이지를 모른다. 

고려.이조선 시기의 지리는 역사사실이라 기정화하고 고대 지리만 잘못된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마저도 전한이 설치한 요동.낙랑 2 군 위치가 아니라 교치된 사마씨 진 시기의 낙랑군 위치를 지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러한 겹겹의 실수도 부족한지 청 영역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을 란하 1 물길로 조작한 일국 명치시기 서향융성 등의 사기질을 간파하지 못하여 화국 정사급 지리지에 설명된 지리.지형 기록을 깡그리 무시하였다. 무슨 간이 그리 크길래 하늘을 나는가? 

 

먼저 교과서의 주요 내용을 발췌 기사화한 일부를 옮긴 후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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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기자 kotr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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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논란거리였던 한사군의 낙랑군 위치가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단 갈석산 또는 고대 요동(난하) 주변으로 확정됐다. 이 곳은 중국의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

이 교과서는 우선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서기전 2333년 단군에 의해 고조선이 건국됐음을 사실로 인정한다. 아울러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등을 사실로 받아들여 고조선 역사의 통시적 복원을 시도한다.

 

상(은)나라 왕족이었던 기자는 '동래설'에 따라 서기전 12세기 (고)조선으로 넘어 와 고대 요동(난하 동쪽) 지역에 기자조선을 세웠으며, 위만은 한나라와 조선과의 전쟁이 격심하던 서기전 3세기 전후 패수(난하)를 넘어 와 기자조선의 준왕을 쫓아내고 비슷한 지역에 위만조선을 세운다. 결국 중국의 진ㆍ한과 고조선과의 실질적 국경선은 지금의 중국 북경 동쪽의 난하가 되는 것이다.

 

위만조선은 나중에 한나라 무제에게 침략당해 서기전 108년 멸망하지만 거대한 제후국이었던 고조선은 지금의 요동을 중심으로 건재했다. 다만 여러 제후국들이 힘을 키워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고조선은 부여 한(삼한) 옥저 동예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여러 나라로 분리되는 '열국시대(列國時代)'를 맞는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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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지리연구소 신석재>

 

기사는 낙랑군 추정지를 화국 하북성 동쪽 끝 지점인 지금의 갈석산 또는 고대 요동? 난하? 주변이라 하였다. 기사 내용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의 주장이라면 명백한 곡해이고 수준 미달의 역사 지리 인식이다. 지금의 갈석산과 산해관이 표시된 지역은 마한.백제 땅이였고 통신라.고려.이조선의 영역이였기 때문이다.

 

화국의 정사급 지리지인 <한서/지리지><후한서/군국지><수경주/고수.경수.난수.대요수.패수> 기록에 의하여 유주 소속의 상곡군부터 동쪽으로 차례대로 설치된 낙랑군까지를 표시하면 아래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소장이 고대 요동을 지금의 난하 최하류 지역으로 추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윤내현 교수의 주장과 흡사한 것을 보면 윤씨와 마찬가지로 단재 신채호가 언급한 고대의 요하는 란하라는 단 한 구절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1932 년 만주국이 건국되기 전까지도 공식적으로 지금의 란하 중.하류가 요하였다. 즉 화국 전한부터 만주국 직전까지 약 2000 여년 동안 요하 곧 <한서/지리지> 요동군 망평현 주석의 1250 리 길이 대요수와 현토군 서개마현의 2100 리 길이 염난수는 아래와 같이 지금의 란하 중.하류를 말하는 것이였고 송.거란 시기부터 대요수는 황하潢河로, 염난수는 요하로 개칭되어 설명.기록되었다.

 

 

 

바꿔말하면 청 시기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은 모두 위 추기와 같이 지금의 당산 부근으로 흘러내렸었다. 그런데 1873 년 경부터 일국 서향융성이 육군 참모부를 동원하여 아래와 같은 지리를 조작해낸 것이다.

 

 

 

즉 현 <화국전도>는 <만주국지도>를 그대로 베낀 것이고 <만주국지도>도 1875 년 일국 육군참모부가 간행했다는 공식 관찬지도라는 아래의 <아세아동부여지도>에 근거하여 제작된 것일 뿐이다.

 

- 1934 년 간행 <만주국지도>

 

- <아세아동부여지도亞細亞東部輿地圖- 이하 <아동도>라 줄임>

일본, 육군참모국, 1875년, 134.6×88.8㎝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 연구/고지도

http://www.dokdohistory.com/kor/gnb02/sub06.do?mode=view&page=13&cid=40894

주) 이 지도는 일본의 육군참모국이 작성한 일본의 공식관찬지도이다. ...

 

하지만 위 <아동도>가 간행된 당시의 이조선.청국.아라사의 국경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위 <아동도>가 제작된 연유가 참으로 기괴하고 무지막지하다. <아동도>는 아래와 같이 청 시기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을 란하 1 물길로 만들려고 란하 상류와 황하 중류를 임의 연결한 후 란하 중.하류와 황하 상류를 지도에서 삭제한 것에서부터 출발한 첫번째 엉터리 지도다.

 

 

 

제위치를 잃어버린 황하.요하 및 그 지류는 물론이고 유역의 모든 지명까지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국의 2000 여 년 동안의 모든 지리지 기록에 맞추어 동쪽 지역에 분산.재배치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진장성동단도 원래 위치인 지금의 하북성 풍윤.천서 사이 지점에서 지금의 산해관까지 동쪽으로 수백 리 연장되어 표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진장성의 연장 조작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갈석산을 시작으로 지금의 대릉하.요하.서요하.혼하.송화강.흑룡강 등의 물길과 지금의 노룡.조양.요양.심양.장춘.혼춘 등의 지명까지 차례로 파급되어 지금의 계운하.옥전 이동의 모든 지리는 지형지세나 2000 년 동안 기록된 방향.거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명칭으로만 화국의 모든 정사급 지리지 기록과 일치하게 된 것이다.

 

한가람연구소가 발간하였다는 교과서 내용도 바로 위와 같은 이동.조작된 현재 지명에 근거한 추정이며 그것도 식민사관맹종자라는 천관우도 지적한 교치군일 뿐만 아니라 설치 후 350 여 년 후의 낙랑군 위치를 설명한 것이다. 또한 이덕일 주장은 본인 것이 아니라 <고조선연구>를 저술한 윤내현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일 뿐인데 윤내현 주장의 총론.각론도 곡해와 망상일 뿐이고 결국엔 식민사관.동북공정 선전.홍보하는 꼴인데 이덕일의 주장에 더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조선 강역을 뒷받침하는 서양 고지도가 있어 제시한다.

 

- <인도와 중국지도>

CARTE DES INDES ET DE LA CHINE

Netherland, Guillaume, Delisle, 1750, 62.7×60.9㎝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 연구/고지도

 

주) 기욤 드릴(Guillaume Delisle, 1675– 1726)은 18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도 제작 가문을 형성하였다. ...

 

 

따라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이 발간했다는 역사교과서 내용이 식민사관의 첫번째 올무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니 `교과서`란 명칭은 당치도 않은 것이다. 화국의 동북공정 극복도 식민사관 파악이 전제이기 때문에 이덕일로서는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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