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북지리연구소 신석재
[식민사관은 지리조작이고 동북공정은 암묵.궤변일 뿐]
1. <대동여지전도>는 위작爲作입니다
한국인들은 아래 <대동여지전도>가 1860 년대 이조선의 강역을 묘사한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 <대동여지전도>

또한 1911 년 멸망한 청국은 지금의 요하 하류와 압록강까지의 지역에 심양.집안.봉성 등 봉천성 봉천.흥경 2 부와 봉황성직예구에 속한 현들을 설치했다고 이해합니다.

청국 정사인 <청사고/지리지> 기록을 보면 맞는 것도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쪽으로 지금의 산해관이나 란하 등의 묘사도 정확할 것이라고 단정하며 또한 이러한 지리는 고조 유방이 건국한 전한 초부터 지명의 일부 개칭은 있었으나 그 위치는 2200 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동이 없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래서 한국강단사학계는 서기전 108 년 서쪽 화국의 고대국인 한나라의 무제 유철이 설치했다는 낙랑군 위치를 지금의 압록강 주변과 한반도 평양지역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강단사학을 비판하는 소위 재야도 단재 신채호 선생이 왕검조선의 3 도읍 위치로 추정한 합이빈.개평.평양 위치를 지금의 합이빈.개평.평양을 가리킨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또 900 여 쪽에 이르는 단행본 <고조선연구>의 내용 때문에 강단사학으로부터 거세게 비판받은 단국대 명예교수 윤내현조차도 왕검조선의 첫도읍지와 3 개의 천도지인 아사달.평양성.백악산아사달.장당경 등의 위치를 지금의 북조선 평양.요동 본계.산해관 부근.북진이라고 추정하며 서쪽 화국의 고대국 한나라가 설치한 요동.낙랑 2 군 위치도 지금의 산해관 부근이였다고 다소 혼란스런 주장을 하였습니다. 결국 윤씨도 위의 <대동여지전도> 묘사와 같이 이조선 강역이 지금의 압록강 이남이라고 인정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위의 <대동여지전도>와 현재 <화국전도>에 표시된 북경 이동의 지리는 이조선과 명.청국 시기의 지리가 아닙니다. 청국이 멸망하기 전인 1872 년부터 섬나라 일국의 정한론자들이 조작한 것입니다. 즉 아래와 같은 22 첩의 소지도로 구성된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제작한 것이 사실이지만 1 장으로 묘사하여 현재까지 전해지는 <대동여지전도>는 명백한 위작입니다.
- <대동여지도 1 / 22 첩>

그 이유는 이조선과 청국과의 국경인 압록강이 <대동여지전도>에 표시된 지금의 압록강이 아니라 아래의 <무제도> 묘사와 같이 지금의 화국 요녕성의 서쪽 끝 지역을 흐른 란하 지류 청룡하였기 때문입니다.
- <무제도: 가칭 `백산대맥도`>

출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위 고지도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와 같이 추기합니다.

즉 위 <백산대맥도>에 묘사된 지리 범위가 아래의 적색 실선 삼각형 지역 곧 지금의 화국 요녕성 서쪽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채호 선생이 언급한 합이빈.개평.평양 위치도 아래와 같이 지금의 화국 요녕성 서쪽 지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결국 1980 년대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요하문명지와도 겹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 1.흑색실선 삼각형꼭지점은 필자가 추정한 왕검조선의 아사달.백악산아사달.장당경 위치
이러한 단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백산대맥도>에 표시된 해亥와 정북正北 때문입니다. 곁들인다면 서쪽 화국의 2000 여년 간 편찬된 모든 정사급 지리지와 고지도에 설명.묘사된 대요수.염난수 곧 황하.요하가 지금의 란하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1910 년 압록강을 건너 청국으로 망명한 단재 시채호 선생도 <조선상고문화사>에서 `고대의 요하는 란하`라고 언급하였었습니다. 해亥는 12 간지 중 12 번째이고 방향을 나타낼 때는 시계 11 시 방향을 가리키며 아래와 같이 백두산의 좌향을 언급한 이 땅의 지리가들 용어입니다.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그리고 대마도와 제주도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했다고 하니, 이는 곧 지관들의 일반론이다.
<성호사설/천지문> 이익(1681~1763)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이다. 해亥 방향에 앉아서 사巳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택리지/복거총론,산수총론> 이중환(1690~ )
<후기 조선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37~38 쪽
그런데 1932 년 만주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위와 같았던 지리를 섬나라 일국의 서향융성이 1872 년부터 육군 장교들을 밀정으로 변장시켜 청국과 조선으로 보내 지리 정보를 수집케하였고 결국엔 란하와 황하.요하 2 물길을 란하 1 물길로 변조한 후 황하.요하를 포함한 유역의 모든 지리를 동북 방향으로 뻥튀기하듯이 이동.재배치시켜 현 <화국전도> 북경 이동의 하북.요녕.길림.흑룡강 4 성 지역 지명 표시와 같은 습작지도를 제작하여 선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첫번째 개략도가 아래의 <아세아동부여지도>이고 그들의 최종 목표는 이조선 강역을 축소시키는 것이였습니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일국 공식관찬지도, 1875 년 육군참모국 간행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 <조선전도> 일국 공식관친지도, 1876 년 육군참모국 간행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그런데 1945 년 찾아온 광복으로부터도 60 여 년이나 지난 2007 년 12 월 31 일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백산대맥도>를 교묘하게 변조한 아래의 엉터리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를 보물 1537 호와 1537-2 호로 지정합니다.


두 지도 모두 <백산대맥도>의 아래 여백에 한반도 북부를 이어붙친 조작지도입니다. 화국 요녕성 서쪽 지역에 있었던 이조선 시기의 백두산.압록강.토문강 등이 지금의 백두산.압록강.두만강처럼 보이도록 한 조작하여 한국인들을 사기.기만하려는 엉터리 지도입니다. 결국 문화재청은 물론이고 한국강단사학계 전체가 반역사적이며 반민족행위질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 <아세아동부여지도>에 1875 년 당시의 지리를 표시하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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