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왜倭에 대해 설명한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 기록 일부입니다.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依山島爲國邑 舊百餘國漢時有朝見者 今使譯所通三十國 從郡至倭 循海岸水行歷韓國 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 始渡一海千餘里至對馬國...
왜인은 대방(군) 동남쪽에 있는 큰 바다 가운데에 산다. 산과 섬에 의지해 국읍을 만들었다. 옛날에는 100 여 국이 한나라에 조견하였고 지금은 30 국이 조견한다고 한다. (대방)군에서 왜에 가려면 바닷가를 따라 한국을 지나며 남쪽으로 또 동쪽으로 가면 그(왜의) 북쪽 해안에 있는 구야한국에 이르는데 이곳까지가 7000 여 리다.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 1000 여 리를 가면 대마국에 이른다....
위 기록은 서기 220~230 년 대 요동을 차지하고 세력을 떨쳤던 공손씨가 요동.낙랑군의 남쪽 지역에 설치하였을 대방군에서 지금의 일본 큐슈에 있었던 야마대국까지의 뱃길을 묘사한 것입니다. 즉 대방군에서 뱃길로 한국을 지나면서 남쪽으로 또 동쪽으로 7000 여 리를 가면 구야한국 곧 지금의 부산 부근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 1000 리 쯤 가면 대마도에 이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앞글에서 <후한서/군국지>의 리 수 기록을 근거로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 리 떨어졌다는 요동군과 4000 리 떨어졌다는 현토군은 지금의 요하 하류가 아니라 지금의 란하 중류에 설치되었다고 추정하였습니다.
즉 현토.요동 2 개 군을 경유하는 2100 리 길이 염난수와 새외에서 흘러와 요동군을 경유하는 1250 리 길이 대요수가 흐를 수 있는 곳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쪽 끝 지역을 흐르는 지금의 란하 중류 정북쪽 지류와 서북쪽 지류 외에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5000 리 떨어진 곳은 지금의 어느 위치쯤이여야 할까요?
즉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 리 떨어진 요동군의 동쪽 끝 경계 밖이고 패수浿水가 흐르는 낙랑군 땅은 어디였을까요?
또한 <한서/지리지> 낙랑군 탄열현 주석과 같이 분려산이 있고 열수가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에 이른 후 바다로 들어가는 820 리 길이의 열수는 과연 지금의 어느 물길이여야 할까요?
한.중.일 3 국 역사학계는 지금의 대한 땅 평양 지역이라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5000 리 떨어지고 요동군 동쪽에 경계를 마주한 낙랑군 위치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서쪽 끝 지역의 쬐그만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820 리 길이의 열수도 대한 땅의 청천강.대동강 혹은 한강이 아니라 지금의 란하 하류 동쪽 지류인 지금의 청룡하였습니다.
추정도 - 낙랑(대방)군과 변진구야한국 위치
위 추정도 표시와 같이 낙양에서 육로로 동북쪽으로 5000 리 떨어진 곳과 그곳의 약간 남쪽 지역에 설치한 대방군에서 뱃길로 한韓 땅을 남쪽으로 또 동쪽으로 돌아 지금의 부산 지역까지 7000 리라고 설명한 <삼국지> 찬자의 거리 감각은 매우 균형적인 시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만한 명백한 근거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서기전 108 년 한나라 무제 유철이 설치한 낙랑군이 지금의 대한 땅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신 나간 자들의 미친 소리입니다.
명 시기인 1621 년 편찬된 <무비지>에 실린 <조선도>에 표시된 요양.심양과 그 동쪽에 표시된 압록강.서경 위치가 지금의 요양.심양과 지금의 압록강.평양을 지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제는 명확해질 것입니다.
결국 위 <조선도>가 묘사하는 범위도 아래 추정도의 흑색 실선 사각형 지역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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