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내가 가장 센 반대론자···결정은 우리 민주당이 하는 것” 정치권과 개신교의 ‘반동성애’ 결탁

입력 : 2022.02.27 16:11 수정 : 2022.02.28 00:31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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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찬성론자냐 반대론자냐? 저는 반대론자입니다. 300명 국회의원 중에 제가 가장 센 반대론자다, 이렇게 보셔도 무방할 거고요.”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말이다. 김 의원이 발언한 곳은 목회자 모임 미래목회포럼이 주최한 ‘대선과 기독교에 대한 토론회’ 자리다.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김진표·김회재 민주당 의원,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참석해 발언했다.

두 여당 의원의 행보는 진보를 내세우는 거대 여당에서 왜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보여준다. 김회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법) 제정에 동의·찬성하는 의원들은 극소수다.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평등법안) 그 자체를 논의 안 하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2020년 발의한 거(차별금지법안)는 논의 자체를 안 하고 법사위에 묶어 두고 있는데, 사실상의 결정을 민주당에서 하는 거다.” 그는 “우리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 당론 채택 이런 부분들이 없다”고도 했다.

두 민주당 의원들이 이날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은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다.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이런 표현이 나왔다. 김회재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법제화된다면 성소수자나 동성애 이런 부분에 반대할 수 있는 토론회를 여는 것 자체도 혐오에 해당된다는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을 때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이 부분이 동성결혼 합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보통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 3년 이내에 동성혼 합법화가 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수도권 유세 전 개최한 기자회견 도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김진표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자신을 2013년 당시 민주당 김한길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법안을 철회시킨 ‘장본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개 개별적 차별금지법 중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사실상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같은 내용의 법을 포괄적으로 한다는 것은 동성애와 동성혼을 사실상 합법화하는 그런 목적으로 법을 만드는 게 아니냐 하는 기독교계 우려를 가중시키게 되고, 동성애, 동성혼에 반대하는 설교나 그런 자유를 어디서 빼앗게 되면 역차별을 만들어내는 것 아니냐 하는 것 때문에 우리 교회가 반대하는 거로 안다. 이런 문제 인식을 우리 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다 같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입법화는) 제가 보기에는 가까운 시간 내에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우리 기독교계가 좀 더 그 뜻을 분명히 해서 공론화 과정을 만들어 (달라)”고도 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차별금지법안 발의 이후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개신교계 반대’ 논리는 15년 째 이어져왔다. 이날 토론회 풍경은 지난 대선과 총선 때를 떠올리게 한다. ‘차별은 반대하고 인권은 존중하지만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들어간 법은 반대한다’는 논리는 이제 익숙하다. 지난 대선 때도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다른 주요 후보들의 입장도 ‘차별엔 반대하지만 법 제정은 아직 안 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앞선 2013년 성별·종교·장애·나이·인종·학력·사상 등과 함께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개신교 단체와 만난 자리에선 추가 입법 불필요 입장을 밝혔다. 2017년 대선 민주당 경선 때 이재명 후보도 법 제정에 동의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 유보했다.

 

개신교 단체가 토론회나 기도회를 주최하고, 정치인들이 참석해 호응하며 일종의 ‘차별금지법·동성애 반대 카르텔’을 맺는 방식도 유사하다. 2016년 2월 전광훈 목사가 대표인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운동본부 주최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3당 대표 초청 국회 기도회’에 당시 김종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대신 참석한 박영선 의원은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한다”고 말했다. 청중은 손뼉을 쳤고, 전광훈 목사는 “항복 선언!”이라고 했다. 정치가 개신교의 반동성애 프레임에 묶인 대표적 사례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러분들께서 우리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주장하시는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 관련 법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 당에서도 방침을 정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소속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지난달 14일 서울 불광동 연서시장 유세를 마친 뒤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지난 10일 미래목회포럼에서 이른바 보수정당 패널들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빠진 법안조차도 반대했다. 황교안 전 대표는 “일단 법이 제정되고 나면 추후에 빠진 부분이 스멀스멀 들어갈 수 있다. 여지를 두면 안 되기에 아예 통과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전광훈 전 한기총 대표회장의 법정대리인이자 기독자유통일당 대표를 지낸 고영일 변호사는 국가인권위를 없앨 의향이 있는지를 민주당 의원들에게 물었다.

이 토론회의 ‘동성애 반대’ 기조는 최근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대선 후보들의 답변을 보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징 등 다양한 이유를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에 관한 입장은 이재명·심상정 후보가 ‘추진’, 윤석열 후보는 ‘일부 추진’이다. ‘군대 내 남성 간 성관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할 것’을 두고 나온 답은 심 후보 ‘추진’, 윤 후보 ‘일부 추진’, 이 후보 ‘추진 불가’다. ‘다양성과 포용을 촉진하고 LGBTI 권리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할 것’에 관한 입장도 심 후보 ‘추진’, 윤 후보 ‘일부 추진’, 이 후보 ‘추진 불가’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유세 버스 사고’로 답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7대 인권의제’ 중 ‘성소수자 권리 보호 및 차별 종식’에 관한 대선 후보별 답변. 출처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는 지난 10일 차별금지법 등 10대 정책에 관한 후보별 답변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헌법상 평등 원칙이 각 분야에서 실현돼야 하므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흐름은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대해 기독교계의 오해가 없도록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며, 제정 과정에서는 폭넓은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려하는 바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충분한 대화와 소통으로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충실히 이뤄나가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곡해가 제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법 제정을 서두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후보는 “일부 정당 등에서 추진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별도 제정의 주된 목적은 동성애 및 성소수자 보호로,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며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한다는 반대 여론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기독인회는 정의당 등이 추진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반대한다는 성명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고 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이사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정치권의 차별금지법 유보나 반대를 두고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개신교 신자들도 예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차별금지법에 동의하는데, 주로 노년의 보수적 남자인 개신교계 지도자들은 압도적 다수가 반대한다”며 “정부나 정치권은 개신교 신자 전체가 아니라 개신교를 과잉대표하는 이들 지도자를 두려워한다. (이들을) 자극해 부담이 될까봐 이 정권이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과반이 넘는 의석수라는) 가장 좋은 조건에서도 추진을 안 했기 때문에 개신교 내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분들이 상당히 기운이 빠진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훌륭한 국가가 되려면 훌륭한 국가의 자격을 (인정) 받을 만한 법이 있어야 되는데 차별금지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가가 그렇다고 볼 수 있겠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말들 많이 하지만,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는 너무 당연한 상식을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지지 여론은 수치로 확인된다. ‘사회적 합의’는 이루고도 남았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0명 중 9명(88.5%)가량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반대는 11.5%였다.

개신교 내부 반대도 줄어들었다. 지난 21일 발표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엔 차별금지법에 관한 개신교 내 기류 변화가 나타난다. 2020년 7월 진행된 같은 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찬성이 42.1%, 반대가 38.2%였는데, 2021년 찬성 42.4%, 반대 31.5%로 반대가 6.7%포인트 감소했다. 연구원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중립적 의견 그룹이 6.4%포인트 증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개신교인의 급진적 인식 변화는 아니지만, 분명히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최근 성소수자를 축복하고 연대했다는 이유로 소속 목사, 신학생을 제재하고 있는 예장통합과 감리교의 개신교인이 반대보다 찬성 입장을 더 많이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으로 꼽았다. 예장통합 소속 개신교인의 경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의 비율은 30.4%로 조사 대상 교단 중 가장 낮고 찬성은 46.4%로 가장 높다. 감리교 소속 개신교인도 찬성 46.3%, 반대 35%다.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고 답한 이들 중 67.9%가 “헌법적 가치에 따라 ‘모든’ 사람의 인권은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22.2%는 “나와 나의 가족도 언제든 차별과 혐오를 받는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대하는 이들 중 가장 많은 답변은 “차별금지법은 여성, 난민, 동성애자에게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역차별을 초래한다”(반대 응답자의 38.1%), “성서는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반대한다”는 답변이 21.3%,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답변이 15.2%였다.

지난 17일엔 한국교회 최초 ‘성소수자 목회 안내서’인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출간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성소수자목회연구모임과 기사연이 함께 펴낸 책이다. 성소수자 교인들이 교회에서 겪는 차별 상황, 성소수자 관련 용어, 환대하는 공동체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등을 담았다. 기사연은 발간사에 “이미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계속해서 침묵한다는 것은 교회의 선교적 과제를 방임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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