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은 본래 몽고 경계로부터 유래하는데, 오라烏喇의 경계로 비로소 들어간 것을 호곤퇴라고 한다.

호곤퇴는 지금의 오라 서쪽 300 리에 있으니, 그 북쪽은 근극산이다. 그 넷째 가지는 흑아소산이 되고, 흑아소의 변문이 있으니 오라가 몽고와 서로 통하는 문이었다.

 

그 산은 또한 남쪽으로 길림봉吉林峰이 되었다.

길림봉은 오라의 서남쪽 370 리에 있으니, 곧 성경에서 오라로 나가는 큰 길이다. 길림의 대령大嶺은 숙신부여의 경계이니 그 동쪽은 옛 말갈 7 부의 땅이요, 서쪽은 옛 부여 선비 고구려의 땅인데, 지금의 길림성 동서쪽에 각각 한 참站이 있다. 두 참과의 거리는 50 리로서, 그 서쪽 참으로부터 성경까지의 거리는 450 리이다.

 

그 산은 또 동남쪽으로 액흑봉額黑峰이 되었다.

액흑봉은 오라 서남쪽 300 리에 있는데, 이 봉우리의 동북쪽 여러 골짜기의 물이 북으로 흘러서 이둔하易屯河가 되어 북으로 혼돈강 동쪽으로 꺽인 곳으로 들어갔다.

 

그 산은 동남쪽으로 고로눌와집庫魯訥窩集이 되었다.

고로눌은 오라의 남쪽 200 리에 있다. 그 북쪽의 한 가지는 북쪽으로 달려가서 불이합산拂爾哈山이 되었으니, 곧 선창船廠의 진산이다. 또 북쪽으로 한 가지는 달려 박둔산博屯山이 되었으니, 금금의 완안루실完顔婁室의 무덤이 있다. 그 동북쪽 여러 골짜기의 물은 모두 혼동강으로 들어갔고, 그 서남쪽 여러 골짜기의 물은 모두 서북쪽으로 흘러서 흑아소하黑兒蘇河가 되었고, 또 거기에서 꺽여 남쪽으로 흘러 대요하大遼河로 들어갔다.

 

그 산은 또 남쪽으로 가이민주돈歌爾民朱敦이 되었다.

가이민주돈은 장령長嶺으로서 오라의 남쪽 500 리에 있으니 발해 때에 장령부를 설치했고, 이 산의 서쪽에 있는 장령은 속말말갈로서 서쪽으로 부여에 통하는 큰 길이다. 그 서쪽의 한 가지는 서북쪽으로 200 여리를 달렸고, 또 서남쪽으로 200 여리를 달려서 황룡강黃龍岡이 되었으니 곧 부여의 진산이다.

 

또 서쪽의 다른 가지는 서남쪽으로 500 리를 달려가서 천주산이 되었는데, 곧 지금의 성경 진산이다. 또 천주산에서 서남쪽으로 300 리를 달려서 철석보가 되었으니 이곳이 곧 대소요하의 합류 지점이다. 우장현과 함께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 산은 또 남쪽으로 납록와집納綠窩集이 되었다.

납록와집은 흥경 동북쪽 200 리에 있으나, 그 서쪽의 한 가지는 서남쪽으로 300 리를 달려가서 개운산이 되었으니, 청나라의 조조.흥조.경조.현조를 장사지낸 곳이다.  이를 합하여 영릉이라 했고, 흥경과 함께 물을 격하여 서로 바라본다. 개운산에서 서북쪽으로 70 여리를 달리면 철배산이 되는데, 이는 곧 소자하와 납록하의 합쳐진 곳이요, 그 성은 계번성이니 곧 청나라 태조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이다. 그 서남쪽 여러 골짜기의 물이 남쪽의 소자하와 북쪽의 납록하로 갈라졌는데, 계번성 서쪽에 이르러서 합류되었다.

 

또 서쪽으로 흘러서 혼하가 되었고, 또 서남쪽으로 200 여리를 흘러서 동쪽으로 태자하와 합류하여 대요하로 흘러들어간다. 그 동북쪽 여러 골짜기의 물이 동북쪽으로 흘러서 휘발하가 되었고, 서쪽으로 고로납의 여러 골짜기의 물을 받아서 혼동강으로 같이 들어갔다.

 

그 산은 또 동남쪽으로 300 여리 뻗쳐 있다.

납록의 남쪽은 모두 큰 산과 높은 멧부리, 깊은 숲과 큰 골짜기인데, 인적이 드문 곳을 모두 장백산이라고 한다. 그 서쪽의 한 가지는 서쪽으로 300 여리를 달려서 호륜령이 되고, 또 서쪽으로 100 여리를 달리면 흥경에 이른다. 다른 한 가지는 서남쪽으로 200 여리를 달려서 분수령이 되니, 이것이 이른바 서개마다.

 

서남쪽으로 500 여리를 달려서 요동의 마천령이 되고, 또 서북쪽으로 200 여리를 달리면 요양주가 된다. 요양 남쪽에 이르기 전에 남쪽으로 한 가지가 나와 서남쪽으로 500 여리를 달려서 금주.여순의 어구가 되는데 바다를 만나서 그쳤다.

 

마천령의 남쪽 한 가지는 200 여리를 달려 동쪽으로 봉황성에 닿아 있고, 또 남쪽으로 200 여리를 가면 굴륭산에 이르러 바다를 만나는데, 이곳이 바로 우리 용만의 서쪽 경계다. 서개마의 큰 가지가 이미 요동의 여러 산에 뻗쳐 있고, 남쪽의 작은 가지는 남쪽으로 500 여리를 달려서 우리 용만의 서쪽 익주 옛 성에 이르러서 물을 만나 그쳤으니, 이것이 바로 압록강과 애하가 합쳐지는 곳이다. 서개마 서쪽의 여러 골짜기의 물은 서북쪽으로 100 여리를 흘러서 요양주를 지나 북쪽으로 태자하가 되고, 서쪽으로 수백리를 달리다가 서쪽으로 혼하와 합류하여 소요수가 되었다.

 

그 산은 또 동남쪽으로 300 여리를 달려서 백산이 되고, 그 위에는 큰 못이 있다.

백산은 오라 남쪽 1300 리에 있고, 그 서남쪽의 한 가지는 홍석엽자와 사두엽자가 되었으니, 이는 곧 옛 고구려 환도성의 진산이다.  모두 400 여리에 주로목극선봉이 되어 물을 만났으니, 곧 압록과 파저의 두 물이 모인 곳이다.

 

그 북쪽의 한 가지는 북쪽으로 달려서 눌진와집이 되고, 200 여리를 지나지 않아 물을 만나 그쳤으며, 눌진 좌우의 많은 골짜기와 많은 봉우리의 물은 모두 눌진 북쪽으로 합류했으니, 이는 혼동강의 여러 근원이요, 큰 못의 물은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온천수와 함께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서 혼동강이 되었으니 이것이 큰 근원이다.

 

이로부터 북쪽으로 400 여리를 흘러서 서쪽으로 휘발하를 받았으며, 또 북쪽으로 300 여리를 흘러서 선창 동서쪽을 지나 아하를 받고, 또 북쪽으로 흘러서 오라 서쪽을 지났으며, 또 북쪽으로 200 여리를 흐르다가 동쪽으로 하륜하를 받았으며, 또 북쪽으로 400 여리를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이둔하를 받았으며, 또 북쪽으로 100 여리를 흐르다가 북쪽으로 낙니강을 받았고, 여기에서 꺽여 동북쪽으로 500 여리를 흘렀다.

 

동남쪽으로 600  여리를 흐르다가 남쪽으로 호아합하를 받았으며, 또 동북쪽으로 600 여리를 흐르다가 흑룡강에 들어으며, 또 동북쪽으로 300 여리를 흐르다가 남쪽으로 오소강을 받았으며, 또 동북쪽으로 1500 여리를 흐르다가 또 동남북으로 꺾여 바다로 들어갔으니, 못에서 나와서 바다로 들어간 것이 모두 합하여 6000 여리다.

 

백산의 남쪽과 북쪽이 두 주종으로 나뉘었으니, 그 북종은 말갈의 7 부와 대황의 동쪽 경계가 되었고, 남종은 조선 8 도가 되었다.


두만강과 압록강의 남쪽에 있는 것을 남종南宗이라 하고, 여러 산이 북쪽에 있는 것을 북종北宗이라 했다. 
북종은 또 세 줄기로 나뉘었으니, 그 정북쪽의 줄기를 감악坎嶽이라 하고, 북쪽의 것을 간악艮嶽이라 하며, 정동쪽의 것을 진악震嶽이라 한다. 감악과 간악 및 진악의 이름들은 여기에 이름을 권도로 세워 찾아보기에 편리하게 하는 바이다.

 

감악의 맥은 백산으로부터 북쪽으로 400 여리를 달려서 근복勤福.진강陳岡이 되고, 또 북쪽으로 200 여리를 달려서 액돈산額敦山이 되고, 또 북쪽으로 200 리를 가서 색제와집色齊窩集이 되었다.

색제와집은 오라와 영고탑 사이에 있으니, 동서로 각각 250 리를 가면, 가히 그 성에 닿을 것이다. 산마루의  서쪽 물은 모두 혼동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동쪽의 물은 남쪽으로 삼하가 되어 북쪽으로 경박鏡泊으로 흐르고, 북쪽으로는 사하가 되어 남쪽으로 경박으로 들어가며, 또 북쪽으로 흘러서 호아합하虎兒哈河가 되었다.

 

감악은 또 북쪽으로 200 리를 달려서 하륜와집賀淪窩集이 되었다.하륜의 동쪽의 한 가지는 동쪽으로 300 리를 달려서 영고탑이 되고, 그 서쪽의 한 가지는 서북쪽으로 600 여리를 흘러서 서쪽으로 법특합法특哈의 변문으로 나가서 물을 만나 그치니, 곧 혼동강의 동쪽으로 꺽인 곳에서 백돌안거불렬의 옛 땅이 되었다.

 

감악이 또 동쪽으로 700 여리를 달려서 아사한와집阿思漢窩集이 되어 물을 만나 그쳤다.물을 만났다고 한 것은 혼동강이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여기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호아합하를 받은 것이다. 곧 두 물이 합친 곳이다. 이곳이 흑수말갈의 소굴이었다. 산등성이의 남쪽 물은 모두 호아합하로 흘러 들어가고, 북쪽의 물은 모두 혼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간악艮嶽의 맥은 근복.진강으로부터 동북쪽으로 400 리를 달려서 마아호력와집이 되었다.이 와집은 영고탑의 남쪽 100 여리에 있으니, 그 서쪽의 한가지는 북쪽으로 달려가서 발해의 상경이 되었는데, 금나라 사람이 그대로 썼기 때문에 그 성궐의 남은 터가 있고, 그 동쪽의 한 가지는 동쪽으로 400 여리를 달려가다가 두만하豆滿河의 북쪽의 산이 되고, 동남쪽으로 400 여리를 뻗어 동쪽으로 하수를 만났으며, 남쪽으로 바다를 만나서 그쳤는데, 이것이 곧 우리의 서수라를 서로 바라보는 곳이었다.

 

간악은 또 동쪽으로 100 여리를 달려서 특림와집이 되었으며, 또 동북쪽으로 1400 여리를 달리다가 물을 만나서 그쳤다.

...

 

진악震嶽의 맥은 특림와집으로부터 동남쪽으로 300 여리를 달리다가 흥개호興開湖에 이르러 북쪽의 호수를 지나 남쪽으로 달렸다.


흥개호는 대파大파이니, 그 둘레가 1000 리로 곤륜에 성숙해가 있는 것과 같다. 호수가 동북쪽으로 흘러서 송하우하松河又河가 되고, 북쪽으로 오소리강으로 들어간다. 호수 북쪽의 한 가지는 동쪽으로 400 여리를 달리다가 물을 만나서 그쳤으니, 이는 곧 모릉하模릉河와 오소리강이 합류한 지점이다.

 

진악은 또 동남쪽으로 500 여리를 달려가서 희객탑산이 되었는데, 그 남쪽을 호란봉壺蘭峰이라 하는데, 창해滄海의 위에 임하여 있다.


호란봉은 우리의 서쪽 수라해水羅海 위로부터 동쪽으로 700 리의 땅을 바라본 것이요, 산마루 서쪽의 물은 모두 수분하遂分河로 들어갔고, 쪽의 물은 모두 범도하范圖河로 들어갔다.

 

진악은 또 동쪽으로 300 여리를 달리다가 여기에서 꺽어 바로 북쪽으로 800 리를 달려서 니만와집이 되고, 또 북쪽으로 1600 리를 달려서 흑룡강 남쪽에 이른다.


오소리강 동쪽은 모두 진악의 맥이요, 대영 서쪽과 흑수 남쪽의 동서 2000 리와 남북 3000 리는 거칠고 멀어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할 수가 없다.

 

[남종 이하부터 본국의 산천까지는 여러 지리 책에 자세히 실려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장지연의 주

 

백산은 동쪽 지방의 곤륜이니 호곤퇴는 반드시 내맥이라고 하지 못한다.
대영내에는 산맥이 서로 닿지 않은 것이 없으니, 백산의 산맥도 또한 반드시 곤륜과 닿아 있었을 것이다. ... 중략 ... 산맥이 어찌 반드시 서쪽을 조祖로 삼겠는가?  백산은 동방의 곤륜이요, 칠보금강은 문풍현포가 되고, 흥개호는 성수해가 되어 엄연한 하나의 곤륜이니, 이로써 말하면, 호곤퇴는 백산의 북쪽 한가지다. 그러므로 백산이 호곤퇴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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