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단군기>`제1세 왕검`

 

.....(선략)

 

於是相地於諸州 乃建都于太白山西南 牛首河之原 曰任檢城 今滿州吉林之地 有蘇密城 在於涑沫江之南 此卽其地也 涑沫江亦稱蘇密河 乃古之粟末水也 新羅時 有粟末靺鞨者 占居粟末之水 及大氏之興 爲其先駈 蓋靺鞨者 古肅愼之後 而亦檀帝遺族也 ... 蓋蘇密涑沫粟末 皆與牛首之意相近 歷世傳訛 猶不失其意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 서남쪽 우수하 들에 세우고 임검성이라 했다. 지금의 만주 길림 땅 속말강 남쪽의 소밀성이 곧 그 땅이다. 속말강은 또 소밀하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예전의 속말수이다. 신라 때에 속말말갈이 있었다. 이들이 속수의 땅을 차지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대씨가 일어나는 길잡이가 되었다.

 

말갈이란 옛날 숙신의 후예이며 또 단군의 자손이다. 후손이 온전치 못하여 선조의 옛 땅을 남의 손에 넘기고 변변치 못한 말갈의 한 갈래가 겨우 분유 땅에서 살다가 대씨가 한번 호령하니 따르는 사람이 수십만이나 되었다.

.....(중략)

이명이 말하기를, `속말수 북쪽에 발해 중경 현덕부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단군이 처음 도읍을 정한 곳이기 때문에 임검성 곧 평양이라 했다. 북으로 상경 홀한성을 가려면 육백리이다. 또 고왕의 꿈 중에 신인이 금부를 주며 말하기를 `천명이 네게 있으니 우리 진역진역을 다스리라`고 했다. 때문에 나라 이름을 진이라 하고 건원을 천통이라 하며 항상 하늘을 공경하여 제사지냈다. 그러나 자손들이 교만해져서 점차 이를 폐지하고 유고와 불교를 함께 좋아하니, 드디어 나라는 시들었다`고 했다.

.....(중략)

居牛首河畔十年 乃遷都於白山之南 浿水之北 曰平陽卽第二任儉城也 蓋今涑沫之地 風氣凄冷 土味勁寒 雖野勢通豁 而耕農之利 不如南土 且涑沫之水 北流入混同江 南地交通 自多不便 此必其由也 淸平云 檀氏之世 四遷其鼎 第二奠都於浿水之北 卽渤海西京鴨綠府地 神州是也

우수하가에서 산 지 10 년이 되어 도읍을 백산 남쪽 패수의 북쪽으로 옮겼다. 이곳이 평양이며 제2의 임검성이다. 지금의 속말 땅은 들이 넓기는 하나 기후가 춥고 토질이 나빠 농사짓기가 남쪽 땅보다 좋지 않았다. 또 속말의 물은 북으로 흘러 혼동강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남쪽과의 교통이 몹시 불편했다. 이것이 도읍을 옮기게 된 이유이다. ....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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