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2018.03.26 03:04

북방사 탐구·대응 방향 주도해온 역사학자 김정배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과 중국의 북방사 인식' 펴내… "고구려·발해사 정치적 타협 안 돼"

원로 한국고대사학자인 김정배(78)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 북방사(北方史) 탐구와 대응의 최전선에 서왔다. 김 교수는 1990년대엔 연해주의 발해 유적 발굴을 주도했고, 2000년대 들어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포함하는 동북공정을 추진하자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으로 그 허구성을 밝히는 활동을 이끌었다.

김정배 교수가 최근 펴낸 '한국과 중국의 북방사 인식'(세창출판사)은 이런 경험을 생생하게 복기하면서 한국사에서 북방사가 갖는 의미, 북한·중국·러시아 등 관련국의 논리, 한국의 대응 방향을 정리한 책이다. 김 교수는 "고구려·발해사의 현장을 먼저 밟고 고민했던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정배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속 연구자를 많이 키우는 일”이라고 했다. /이명원 기자

김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갔던 1980년대 초 중국 학자들이 발해를 말갈족 역사, 당나라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 중국 정사(正史)가 발해를 자기 역사로 생각하지 않아 본기(本紀)가 아닌 북적열전(北狄列傳)에 기록한 것과 다르고 설득력도 떨어졌다. 그런데 1993~1994년 연해주 크라스키노·코르사코프카의 발해 유적 발굴에 참여한 러시아 학자들도 중국 학계의 영향으로 발해를 말갈족 국가로 간주했다. 하지만 발해 유적에서 나온 유물이 고구려·통일신라와 관련성을 보여주자 그들의 인식은 점차 바뀌었다. 김 교수는 "연해주 발굴은 한국 학자들이 발해 유적을 직접 접함으로써 발해사 연구에 발언권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큰 성과"라고 말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처음 포함한 것은 1940년대 김육불의 '동북통사(東北通史)'였다. 하지만 '고구려는 중국 동북의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주장은 중국에서도 영향력 없는 소수설이었다. 곽말약·전백찬 등 중국 학계를 이끄는 석학은 '고구려는 한국사'라고 했고, 모택동·주은래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까지 "광개토대왕비는 한국사"라던 중국 학자가 '중국고구려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소수민족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앞세우면서 '청나라 영토에서 이뤄진 역사 활동은 중국사'라는 역사지리학자 담기양의 강역(疆域) 이론이 표준이 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동북공정은 학문적 토대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한국 역사서는 물론이고 중국 정사들 역시 고구려를 신라·백제와 함께 '해동삼국(海東三國)' '삼국'으로 서술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중국 학계와 교류는 계속하면서도 고구려·발해사는 정치적으로 타협하면 안 되고 학문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북공정은 한국의 고대사 인식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구려·발해가 주목받으면서 통일신라와 발해를 대등하게 보는 학계 일부의 '남북국 시대론'이 힘을 받았다.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는 북한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며 '후기신라론(論)'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 는 "발해사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지만 삼국통일을 부정하면 고구려사까지 중국에 넘겨줄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이런 주장은 '일통삼한(一統三韓)' '삼한위일가(三韓爲一家)'라는 우리의 전통적 역사 인식과 어긋난다. 김 교수는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미도 담고 한국고대사의 외연도 넓히는 '통일신라와 발해'라는 역사 체계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김정배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속 연구자를 많이 키우는 일”이라고 했다. /이명원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6/20180326001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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