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현 중국전도에 표시된 아래의 지리를 의심해야만 한다.

 

 

 

위와 같은 지리 표시를 토대로 서기전 24 세기 경의 왕검조선의 아사달 임금성이나 3 세기 경의 준왕조선 왕검성과 고구려 평양성을 지목해서는 안된다.

 

준왕조선의 왕검성이나 낙랑군 및 고구려 평양성을 한반도 평양이라고 단정하는 한국사학계를 비난하며 비정批正(혹 定)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동원하여 인하대고조선연구원들과 같이 지금의 요동 해성 혹은 요양이라고도 하며 또 윤내현.이덕일 등과 같이 지금의 산해관 서쪽 갈석산 부근이라며 목청을 높힌다.

 

그러나 지금의 란하.대릉하.요하.압록강 등이 표시된 중국전도로는 왕검성.낙랑군.평양성은 한반도 평양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로 산해관 갈석산 부근이 낙랑군일 수가 없는 것이고 요동의 요양 부근이 고구려 평양성일 수가 없으며 고려 국경이 요하일 수가 없는 것이다.

 

왜인가?

 

한국.중국의 역사지리 문헌에 설명된 지리가 현재의 한국.중국전도 표시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일본명치왕과 서향융성이 1873 년경부터 청 시기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을 란하 1 물길로 조작한 습작지도가 1932 년 만주국의 지도에서 공식 채택된 후 1948 년 건국된 중공에게 그대로 습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청국이 멸망한 1911 년까지의 청국과 이조선의 지리는 아래와 같았다.

 

 

 

 

위와 같은 지리여야만 중국의 모든 정사급 지리 기록 곧 <관자><설원><사기><삼가주석><한서><후한서><삼국지><진서><위서><수경주><수서><신.구당서><통전><요사><금사><원사><명사><만주원류고><청사고> 등은 물론이고 송.명.청 시기 간행된 모든 고지도와 일치한다.

 

즉 <후한서/군국지> 요동군과 <한서/지리지> 요동군 망평현 주석과 같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 리 떨어진 요동군 지역을 1250 리 길이 대요수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4000 리 떨어진 현토군을 경유한 2100 리 길이 염난수가 흘러들어야 하고 준왕조선의 왕검성 부근 곧 서한 무제 유철이 설치한 낙랑군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5000 리 떨어진 곳이여야 하고 그 지역에는 820 리 길이 열수가 흘러야 하는데 이러한 지리와 지형은 청국이 멸망한 1911 년까지 변동이 없었으며 이러한 지리를 충족시키는 지역은 오로지 지금의 란하 중류 지역 뿐이기 때문이다.

 

 

- 1137 년 송나라 황상이 각석한 <지리도>

 

 

 

- 1612 년 명나라 모워의 가 편찬한 <무비지>에 실린 <조선도>

 

 

 

 

또한 당연히 <삼국사기><삼국유사><동국통감><조선왕조실록> 등과 이조선 선학들의 개인 기록인 <성호사설><택리지><강역고-정약용><조선상고사-신채호><환단고기/북부여기-계연수> 등의 기록은 물론이고 아래의 이조선 영조시기 홍문관에서 제작한 고지도와 일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비정批正의 문제가 아니라 지리를 통관하는 연혁이다.

 

위 정상 고지도조차도 일본 명치왕과 서향융성의 하수인인 육군참모부 편찬과.지도과에서는 아래와 같이 변조하였고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2007 년 12 월 31 일 한국보물 제 1537 호로 지정까지 하였다.

 

 

한국역사학계는 시민들을 향하여 전문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역사를 해석한다고 한다.

과연 역사를 왜곡하고 맹종하며 무지무식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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