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기사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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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 고고학 교수 “KBS2 `` ‘고려거란전쟁’ 국경선 틀렸다, 당시 압록강은 중국 요하``
천지일보 기자명 이예진 기자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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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에 의해 국경선 축소돼”
그가 지적한 지도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벌어지는 지경(地境)에 대한 내용이다. 복 교수는 “고려와 거란이 전쟁할 때 압록강은 지금의 중국 요하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압록강을 오늘날의 압록강으로 설정하여 지도를 그리면 고려영토의 약 250㎞정도가 축소되게 된다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는 것이다”라며 “사실 현재 드라마제에 의해 국경선 축소돼”
그(에서 쓰고 있는 지도는 아마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도를 기본으로 한 것 같은데, 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지도가 고려의 실제 영토를 2/3이나 줄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원인으로 대일항쟁기 때 일제가 조작한 지도를 꼽았다. 그는 “1913년에 만들어진 지도인 조선역사지리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이는 일제에 의해 우리 역사가 조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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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가 언급한 위 기사 설명 중 적색 표시 구절은 아래와 같이 서술되어야 옳은 것이다.
중국 하북성 동쪽 끝에 표시된 지금의 란하 중류 지점의 동쪽 지류다.
동서 폭 2000 리 쯤인 지금의 요녕성과 길림성 남부 정도가 축소되게 된다는 것...
1875 년 일본육군참모부가 간행한 일본 공식 관찬지도라는 <아세아동부여지도>의 표시를 지금까지 쓰고...
복기대.윤한택 등은 지금의 압록강이 고구려.고려.이조선의 압록강이였다고 주장하는 한국사학계를 비판하며 고려 압록강만큼은 지금의 요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윤의 주장은 한국사학계의 주장보다는 조금 진척된 듯 보이지만 지금의 요하를 중국 2 번째 정사 <한서/지리지>의 요동군 망평현에 주석된 1250 리 길이 대요수 혹 현토군 서개마현과 요동군 서안평현을 경유하는 2100 리 길이 염난수라고 인식하는 점에 있어서는 한국사학계와 똑같은 것이다.
복기대의 주장을 조금 수정.보완하자면 고려 압록수 뿐만 아니라 고구려 압록수도 이조선 압록강에서 북쪽으로 450 리 떨어져 있었다. 즉 고구려와 고려 압록수는 같은 물길이고 중국 한.당 시기 요동 요양현을 경유한 요수였고 요.청 시기의 혼하였다. 반면에 이조선의 압록강은 전한 시기 낙랑군을 흐른 820 리 길이 열수였고 고구려.고려 시기에는 살수로 불렸던 것 같다.
한편 이조선 시기 이중환.이익 등의 기록에 백두산의 좌향이 해좌사향이라 했는데 특히 해좌亥座의 의미는 이조선의 도읍인 지금의 서울을 기준으로 해 방향 곧 시계 10 시에서 12 시 사이 방향을 말하는 것으로 아래 추정도의 적색 실선이다.
따라서 복기대 등의 주장은 명백한 식민사관 논리일 수 밖에 없고 동북공정 찬양하는 반민족행위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이조선의 북쪽 경계선이 지금의 북조선 북쪽 경계와 똑같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세아동부여지도>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 연구/고지도
그 이유와 근거는 무엇일까?
1873 년경부터 일본 서향융성이 명치왕의 권위를 활용하고 육군참모부를 동원하여 청국의 직예.봉천 경계 지역 지리를 변조.이동시킨 엉터리 습작지도를 간행.선전하여 1932 년 만주국지도에서 공표하였고 1948 년 중국이 만주국지도를 습용했기 때문이다. 가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기전 202 년부터 1932 년 만주국이 건국될 때까지 약 2100 여 년 동안 황하.요하 곧 <한서/지리지>의 대요수.염난수는 지금의 란하 중.하류였다.
1137 년 송인 황상이 바위에 새겼다는 아래의 <지리도> 탁본을 보라. 거란.요국의 동경요양부 곧 전한 시기 요동군 요양현이였고 청국이 멸망한 1911 년까지도 봉천성 봉천부 요양주 위치가 지금의 산동반도 정북쪽인 것이 보이는가?
이러한 연유로 1910 년 망국후 압록강을 건넌 신채호 선생이 고대의 요하는 란하라 했고 계연수 선생도 조금 과장되었지만 패수를 란하라 한 것이다.
아래는 현 <중국전도>에 중국 2 번째 정사인 <한서/지리지>에 기록된 요서군 비여현을 경유하는 난수, 요동군 안시현으로 흘러내린 1250 리 길이 대요수와 현토군 서개마현과 요동군 서안평현으로 흘러내린 2100 리 길이 염난수 곧 송.요 시기부터 청 시기까지의 황하.요하는 청색 실선으로 추기한 것이다. 또한 1656 년 이조선 효종의 동생 인평대군의 진주정사 로정인 의주에서 북경까지 1990 리 로정은 적색 실선으로 추기하였다.
결국 지금의 <중국전도>는 아래와 같은 일본놈의 지도 위.변조 결과일 뿐이다.
주) 청색 표시는 서기전 202 년부터 1932 년까지의 지리이고 적색 표시는 1932 년 이후부터의 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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