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 년 당시 서북 방면 지리는 아래와 같았다.

 

 

그래서,

1910 년 압록강을 건너 청국으로 망명한 신채호가 <조선상고문화사>에서 `고대의 요하는 란하` `패수는 해성의 헌우락`이라 한 것이며,

압록강 변에서 일본 경찰에게 살해된 계연수도 <환단고기/북부여기> 본문에 `패수는 금今 란하`라는 자신의 지리 비정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서국의 2600 여 년 간 요수 위치는 아래 추정도의 적색 숫자와 같았기 때문이다.

 

 

즉,

적색 1 물길은 춘추 시기부터 진시황 시기까지의 요수였으며,

적색 2 는 서한 시기부터 당 시기까지의 대요수였고,

적색 3 물길은 송.거란 시기부터 청국이 멸망한 1911 년은 물론이고 만주국이 세워진 1932 년까지의 요하였다.

 

따라서,

청색 1 물길은 고구려.고려의 압록수였고,

청색 2 물길은 진국(발해)의 압록수였으며 고구려에서는 서압록이라 칭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청색 3 물길은 이조선의 압록수였고 서기전 3 세기의 준왕조선 열수였고 고구려의 살수였을 것이다.

 

 

위와 같았던 서국의 요수 3 물길을 진짜 일본 명치왕을 독살하고 이등박문 출신지인 조슈번의 하급무사로 추정되는 일본명치왕놈과 가짜 명치왕을 세운 서향융성이 1873 년경부터 변조하여 아래와 같은 습작지도를 제작.배포하고 1932 년 만주국의 지도에서 확정시켜 서국 2600 여 년간의 요수.요하가 춘추시대부터 지금의 요하인 것처럼 천지개벽.환골탈태된 것이다.

 

 

결국 해좌사향亥座巳向이라는 이조선 시기의 백두산의 좌향이 대한민국에서는 축좌미향畜座未向이 된 것이다.

 

역사에 관심있는 대한의 모든 이들은 신뢰할 수 있는 증거 기록을 제시하고 상식.합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으면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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