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신흥무관학교로 검색한 나무위키 설명문 중 일부다.

 

``1911년 서간도에 이주한 이회영이상룡 일가를 비롯한 민족운동가들이 첫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경학사의 조직과 신흥강습소의 설립이었다. 이들은 1911년 5월(음력 4월) 봉천성 동변도(東邊道) 해룡부(海龍府)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대고산(大孤山)에서 군중대회를 열어 경학사 조직을 결의했다. 경학사는 서간도 이주민을 위해 농업 등 실업과 교육을 장려하고 장차 군사훈련을 시키기 위해 만든 결사(結社)조직이었다. 한편 경학사는 이주민들을 위하여 만주지역에서 최초로 벼농사를 보급하기도 했다.

망명지사들이 서간도에 온 목적은 항일독립운동과 그 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고, 그것과 직결되는 사업이 바로 무관학교 설립이었다. 따라서 신흥강습소는 중등과정의 교육뿐만 아니라 군사과를 두어 처음부터 독립운동 전사들을 길러내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출발했다.

1912 년 봄부터 망명지사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에서 동남쪽으로 90리 떨어진 봉천부(奉天府)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1912년 7월 20일(음력 6월 7일), 100여 명이 모여 신흥무관학교 낙성식을 가지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신흥무관학교 위치는 바로 합니하가 학교 주위를 거의 360도 휘돌아 흘러 마치 해자(垓字)처럼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비로소 서간도 합니하에 모두가 염원하던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면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 통화현은 과연 어디였을까?

지금의 압록강 중류 북쪽에 표시된 통화 부근일까?

 

아니다.

지금의 통화는 1932 년 건국된 일본 꼭두각시국 만주국의 통화현이다.

 

1911 년 멸망한 청국의 봉천성 흥경부 통화현은 아래와 같이 지금의 란하 하류 동쪽 지류 지금의 청룡하 상류 지점이다. 

 

 

근거는 당시의 요하가 위 표시와 같이 지금의 란하 정북쪽 지류이고 이조선의 압록강이 지금의 청룡하이기 때문이다.

 

 

<청사고/지리지> 봉천성 흥경부 통화현

府東南二百七十裡 明 建州衛之額爾敏路 光緖三年置縣 隸興京同知 宣統元年改隸府 縣境居旺淸邊門外 北龍岡山脈 自興京.海龍間納噜窩集入 迤邐而東 歷臨江直達長白山 亘二百餘裏 山南之水皆入鴨綠江 山北之水皆入松花江 爲鴨綠江松花江之分水嶺 以其爲永陵幹脈 故曰龍岡 南有渾江 自臨江入 西流屈東流 復迤西南入懷仁 左受大羅圈溝河小羅圈溝河 右受哈泥河加爾圖庫河 舊設馬撥七 西哈馬河快當帽子英額布歡喜嶺半截拉子入興京 又快當帽子西南行 曰高麗墓頭道溝等入懷人

주) 高麗墓: 광개토왕릉 즉 영락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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