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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적봉일대, 4천년전 고조선 문자 추정 도기문자-갑골문 발견
“이 유적들과 고조선과의 연관성에 대해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찬구 박사 | 기사입력 2022/01/06 [10:19]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는 2018년 3월 15일 네이멍구자치구 츠펑시(적봉시,Chifeng) 가오쟈타이쯔(高家臺子,Gaojiataizi)유적에 대한 고고학 발굴에서 약 4000년 전 샤자뎬(하가점Xiajiadian)하층문화 시기 도기(陶器)에 붓으로 쓴 문자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게는 하가점하층 문화로 알려졌는데, 이 문화가 고조선 문화와 시기나 영역이 겹친다는 면에서 고조선문자로 추정할만하다. 이미 4년 전에 보도된 것이었으나 국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신문에 의하면 네이멍구자치구 문화재 고고연구소와 지린대 변강고고연구센터로 구성된 합동 고고학팀이 적봉시 고가대자유적에 대한 구조적 고고학 발굴에서 이 문자를 발견했다. 적봉시 원보산(元寶山)구에 있는 고가대자 유적은 총면적 1만 여㎡로 하가점하층 문화 초기로 보이며, 기원전 2070년부터 기원전 1600년 사이에 해당한다. 고고학자들은 유적지에서 집터 · 회갱 · 회구 · 묘장을 잇따라 발견하였는데, 출토 유물은 주로 토기 · 석기 · 골조개 · 동물 골격 등이다. 내몽고유물고고연구소 롄지린(連吉林) 연구원은 "하가점하층 문화 재구덩이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깨진 도기(陶片)는 도발(陶鉢)의 입복부(口腹部) 잔해"라며 "도편문자의 필체의 굵기와 세련함으로 미뤄 볼 때 붓에 먹을 묻혀 도발의 내벽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문자가 도기에 묵서(墨書)로 쓴 것임을 말해준다. 그동안 오래된 묵서로 3500년전 상(商)나라 “묵서도편”이 있다. 이보다 최고 500년은 앞선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전문가 감식 결과 도기에 적힌 글자는 기록 문자에 해당돼 당시 제사(祭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문(陶文)은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과 같이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가대자유적에서 발견된 도문은 비교적 성숙하고 필획이 세련(유창)된 것이 제사 용어로 추정되며, 중국 고대 문자의 발생과 기원 등을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중국 북방일보(北方日報)는 2018년 3월 6일자 기사에서 이 도기문자를 소개한 데 이어 같은 고가대자유적에서 갑골문도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중국에서 고고학적으로 갑골문이 발견된 가장 북쪽에 있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상대(商代)의 갑골문보다 앞서는 것이다. 이어 연길림 연구원은 갑골문도 고가대자유적의 재구덩이에서 출토되었으며 그 시대는 하가점하층문화 시기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발견된 갑골은 2자(字)의 갑골문 문자를 각획(刻劃)한 복골(卜骨)의 한 면, 다른 뒤 면에는 달구어 뚫은 구멍이 있었다. 이는 당시의 점복(占卜)활동과 관계가 있다. 새긴 문자는 앞면 상단에 희미하게 보인다. 신문은 고가대자유적은 과학적인 발굴을 거쳐 연대가 확정되었고 층위치가 명확하며 발견된 갑골문과 도기문자는 비교적 성숙되었고, 제사와 점복용어로 추측되며 이리두(二里頭)문화 시기의 문자에 속한다고 보도했다. 상대(商代)의 갑골문과 마땅히 밀접한 전승관계가 있는 것으로 중국 고대문자의 발생 및 갑골문의 기원 등을 탐색하는데 새로운 근거를 제공하였다고 보았다. 외신을 근거로 이번의 고고성과를 종합하면 고가대자유적은 중국의 가장 북쪽에서 도문과 갑골문이 한 개 유적에서 동시에 출토된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로 볼 수 있다. 비록 이번에 발견된 글자 수는 몇 글자밖에 안 되지만 한 곳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추가적인 발굴이 이루어질 때, 과거 상(商)나라 갑골문이 일시에 무더기로 발굴되었던 전례가 다시 발생 안 하리라고 볼 수 없다. 하가점하층 문화에 대한 학계의 의견을 들어 보고자 한다. 하가점하층 문화에 속하는 삼좌점(三座店)과 성자산(城子山)에서 석성과 제사유구, 주거지 등을 현장 답사(2007년10월7일 경향신문)한 이형구 교수(전 선문대)는 이 유적들과 고조선과의 연관성에 대해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한 바 있고, 복기대 교수(인하대)는 고조선 유적으로 추정했다. 신용하 명예교수(서울대)는 “요서지방의 홍산 문화와 하가점하층 문화의 3족토기는 한강문화의 뾰쪽밑 빗살무늬토기의 영향과 교류 속에 출현한 것이며, 고조선문명의 서부지역 토기형태”(고조선문명의 사회사,2018)라고 언급했다. 또 우실하 교수(항공대)는 “류국상은 청동기시대로 진입하는 하가점하층 문화 시기에는 ‘고급문명사회’에 진입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학자들 가운데 단군조선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초기 단군조선과 연결시키기도 한다”(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2018)고 말하면서도 적봉, 조양, 오한기를 잇는 지역이 단군조선의 초기중심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는 류국상이 이 문화시기를 B.C.2000 ~ B.C.1500년으로 보고 있으나, 절대 연대로 B.C.2300 ~ B.C.1600년으로 보았다. 반면에 송호정 교수(교원대)는 “하가점하층 문화는 채색토기나 나무 판재로 무덤 곽을 짜서 매장하는 등 비교적 중원문화와 유사성을 보이며, 지석묘나 석관묘를 주로 만든 예맥족의 문화나 한반도 지역의 문화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2016.10. 10. 동아일보)며 고조선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이는 강단내 주류학자들의 의견을 대변한 말로 보이는데, 중국학계에서도 치(雉)가 있는 석성 등으로 중국문화라고 단정 짓지 못하고 별도의 북방문화나 동이문화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면에서 보면 자칫 동북공정에 동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이 시기, 이 일대의 방국(方國)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고조선밖에 없다는 점에서 하가점하층 문화는 고조선 문화”(한국통사, 2019)라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중국학자 왕혜덕(王惠德)은 30여년 전에 “환발해(環渤海)의 신석기시대 문화지역계통에서 후(後)홍산문화인 소하연유형은 위로는 조보구문화를 계승하고 아래로는 하가점하층 문화로 이어지는 하나의 완정(完整)한 발전 과정이 있는 바, 이를 동이(東夷)문화의 주류”(鳥圖騰的濫觴一兼談東夷文化,1990년)라고 명백히 지적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 언론이나 학계에서 고조선문자로 추정할 수 있는 하가점하층 문화의 고고학적 발굴 사실을 숨겨온 점이 이상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상(商)의 갑골문보다 더 이른 시기에 동이문화권에서 갑골문이 발견된 것은 그동안 상(商)에만 갑골문이 있었다는 주장과 문자가 없는 복골로만 알려져 온 것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도기문자도 묵서(墨書)로 기록했다는 면에서 붓의 역사도 고조선이 상(商)보다 앞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상(商)은 같은 동이문화권으로서 고조선과는 선후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부여의 영고(迎鼓)가 상나라 달력으로 정월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말에서도 같은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문명의 형성에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문자의 유무이다. 요(堯)의 도사유지에서는 ‘文(문)’과 ‘邑(읍) 또는 易(역)의 유사자’ 등 두 글자가 발견되었다. 반면에 이미 하가점하층문화인 삼좌점(三座店)의 석성에서 부호문자(도편문자) 두 글자가 발견된 바 있다. 만약 이번에 나온 두 건의 5~6개 문자가 고조선문자로 확인될 경우에 우리는 명실공이 요순이나 ‘상(商)문명’에 대응하는 ‘고조선문명’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lee291838@naver.com *필자/이찬구 박사. 신시역사문화연구원 “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의 저자.lee291838@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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