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탈사 연구총서 사업’ 시작하는 김도형 이사장
식민지배 시기를 모두 담아내고, 일반용 교양총서 70권도 발간
갈등 극복·화해 위해선 역사적 사실 확인하고 인식을 같이해야
“일제 식민지배는 정치·사회뿐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민지하에 근대적 변화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근대화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식민지 구조와 생활의 변화들이 어떻게 연관되었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걸 못 밝히면 ‘식민지 근대화가 최고’라고 되는 거죠.”
동북아역사재단이 2020년부터 3년간 일제의 한국 침탈 피해를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일제 침탈사 연구총서 사업’을 시작한다. 연구총서 50권에 관련 내용을 집대성한 자료집을 100권 만든다. 시민들을 위해 내용을 쉽게 정리한 교양총서 시리즈 70권, ‘한일회담’ 연구까지 예정돼 있다. 사업비는 총 20억원, 역사학계 연구사업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난 김도형 이사장(67)은 “최근 한·일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학계나 정부에서나 제대로 대응을 하려면 구체적 사실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반일종족주의>를 통해 역사수정주의 논란이 일고,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일본이 수출 규제를 단행하는 등 한·일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어느 때보다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일반 시민들의 상식은 애국주의적 관점에 머무른 것도 사실이다. 김 이사장은 “해방 70년이 지났지만 일제시대를 정리한 통사가 두세권 정도”라면서 “강제징용이나 3·1운동 관련 숫자들도 출처마다 다르고, 근거도 명확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고 했다. “자료를 객관적으로 소상히 공개하고, 잘못된 정보와 역사 인식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연구는 일제 식민지배의 전 시기, 전 분야를 망라한다. 편찬위원회에서 일제 식민지배 정책이나 일본군 ‘위안부’, 전시동원부터 여성, 의료, 교육, 종교 등 생활 분야까지 50가지 주제를 선정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에 다시 불거진 ‘식민지 근대화’ 주장에 대한 물음에 “무엇이 근대화라고 생각하느냐”면서 반문했다. 그는 “경제발전이 있다는 것은 맞다. 통계 자체로는 생산량이 늘어나고 소득도 향상됐다. 하지만 근대 사회에서 더 중요한 건 민주주의 정치의 발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제 식민지에서 개인과 인권의 성장, 민주주의 경험은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식민지 근대화는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입체적 조망이 필요하다. 그는 “경제적으로 생활이 나아졌지만 나아진 것 이상의 부가 일본으로 갔고, 근대화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를 생각해보라”면서 “생산물이 생산해낸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닌 ‘떡고물 떨어지듯이’ 이뤄진 것을 근대화라고 할 수 있냐”고 말했다.
또 ‘식민지적 특질’도 살펴봐야 한다. 이를테면 비료공장을 만들고, 생산력이 늘어나 증산된 쌀이 흘러간 곳은 일본 아니면 만주의 전쟁터였다. 일제에 필요한 산업 분야에서만 불균형적 발전이 이뤄진, “일본 자본주의의 분업 구조 속에 포섭된 형태의 경제개발”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를 얘기하려면 그러한 경제 성장의 문제점을 포괄해야 한다”며 “함부로 써서는 안될 말”이라고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상고사 연구를 두고 ‘외풍’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김 이사장은 “지도의 강역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학계에서 해결할 문제이고, 재단에선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부도처럼 ‘동북아역사문화지도’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우선 일제침탈기에 맞춰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 사령부의 배치 현황, 각 도의 산미증식 현황 등 일제시대 침탈과 독립운동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를 만들려 한다”고 설명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역사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김 이사장은 “화해는 무조건 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공통의 인식을 공유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날 한·일 두 나라의 갈등도 너무 먼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 사과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어요.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사과 그리고 식민지배는 합당하지만 과정 속에서 발생한 가혹한 탄압과 피해에 대한 사과. 일본 정부가 하는 사과는 후자에 서있어요. 반면 식민지배 불법성을 확인한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은 전자에 서있죠. 애초에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 때부터 미뤄둔 문제입니다. 역사 화해는 결국 과거의 사실을 명확하게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정을 해야 가능합니다. 재단에선 화해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연구하는 거죠. 새로운 미래로 가는 출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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