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동북공정에 대처하지 못하는 한국역사학계와 정부 산하 기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은 물론이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심지어 식민과 공정의 핵심 논리가 뭔지도 모른다.

정체.당파성론이나 지방역사 및 문화 침탈 등에만 대처하는 정도다. 

그것도 마지못해 비난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당연히 재야나 일반 시민들도 식민.공정이 그런 줄 안다.

 

하지만 식민.공정의 핵심 논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의 중국 요녕성 전체 영역은 상고시대부터 중국 영역이였다는 것이 그 핵심 이론인 것이다. 

즉 대한임정 강역은 물론이고 역사 강역까지 빼앗겠다는 논리다. 

바꿔말하면 중국 요녕성 서쪽 지역인 요하문명지가 환웅천왕의 고조선, 단군 왕검이 세운 조선.왕검조선 및 단군의 제위를 이은 단군부여의 영역이였고 또한 그 남쪽인 지금의 요동만 북안 해안 지역이 천군天君 영역인 진辰.한韓의 영역이였다. 

 

한.당.명.청 시기의 요수.요하가 어디인지 중국 지리지 기록과 고지도를 보라. 

지금의 요하인가? 

아니다. 

지금의 란하 중.하류다. 청 시기의 란하는 지금의 란하 상류인 물음표 ? 의 곡선 부분만이고 중.하류는 삭제된 것이다. 조작자는 황하 상류를 삭제한 후  지금의 서요하로 인식시키려고 당시의 흑룡강 상원이라고 위작하였지만 흑룡강이 황하일 수도 없고 황하가 요하의 상류 세 지류 곧 서요하.신요하.동요하 중의 서요하일 수도 없는 것이다. 즉 황하는 요하의 중류로 흘러든 물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장성을 바다인 요하 최하류를 건너 뛰어 동쪽 내륙까지 더 연장시켜 표시하였다. 대단한 신공이다. 하지만 이 땅에 구석구석에는 일본놈 서향융성 등이 작란질한 증거도 도처에 남아 있다. 아래의 <왜황도>가 대표적일 것이다.

 

 

- 황하를 위작한 엉터리 <황조일통여지전도> 황하 부분도 - 앞으로 <왜倭황도>라 하겠다

1832 년 청국 이조락 등이 간행한 <황조일통여지전도>를 1865 년 일본에서 재간행했다는 엉터리 <황조일통여지전도>

 

 

주) <명사/지리지><청사고/지리지> 등에는 황하가 위의 짙은 청색 추기선과 같이 흐른 것으로 설명.기록되어 있다.

 

 

즉 위 <왜황도>의 황하 표시는 지금의 요하를 고대부터의 요하라고 인식시키기 위해서 황하를 당시의 흑룡강으로 변조한 증거인 것이다. 일본놈 서향융성은 위와 같은 중국고지도를 변조하는 짓까지 서슴치 않았고 1875 년 <아세아동부여지도>라는 엉터리 지도를 간행.홍보질하면서 청국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 작란질을 고착시키려 하였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1875 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일본공식관찬지도라며 간행함.

출처: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결국 중국역사 2000 여 년간의 요하가 원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3000 여 리 쯤 이동되었고 김부식의 <삼국사>에 기록된 2000 여 년 전의 삼국 초기 흥망지도 지금의 요하 동쪽 지역으로 옮겨져 인식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즉 일본은 조작하고 중국이 암묵.향유하는 것이 식민이고 공정인 것이다.

 

광복 이후 당연히 역사 복구가 이루어져야 했지만 쓰레기 이병도 등은 일본놈의 지리 조작질 결과가 역사 사실이라며 지금까지 80 여 년 동안 사기.기만에 불과한 강의질로 일관하고 있고 정부 산하의 역사 관련 기관들까지도 가세하고 있다.

 

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동북아재단.독립기념관 등 수장들의 왜색 발언을 비난만 하고 있을 셈인가? 

 

나는,

식민.공정을 수용하고 지휘하는 소굴인 서울대학교 역사학과를 영원히 폐과시켜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은 상징적인 단안을 내리길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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