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년 8 월 우리에게 불쑥 찾아온 광복, 완전한 것이였을까?

 

아래는 현 <중국전도> 중 지금의 란하.요하.압록강 유역의 부분도다.   

 

 

 

위의 큰물음표? 모양의 적색 실선 내 지역은 1945 년 광복 이후부터 대한인의 영토 관념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종국에는 근세 뿐만 아니라 고대부터도 중국의 영토였다고 자기최면에 빠져들었다.

 

고조선.왕검조선부터 고려.이조선에 이르기까지 대략 5000 여 년 동안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온 땅이 지금의 압록강.백두산.두만강 선에서 북쪽으로는 지금의 합이빈.농안 등의 지역까지와 서쪽으로는 통화.연산관.봉성 등까지의 지역이였을까?

 

아니다.

1910 년 일본에 강제병합당할 당시 대한제국의 서북 경계는 당연히 압록강이였고 그 압록강은 지금의 중국 하북.요녕 2 성 경계 지역을 흐르는 지금의 란하 최하류의 동쪽 지류인 청룡하였다. 결국 1945 년 8 월의 광복은 임정대한민국의 반쪽 땅 수복에 그친 것이다.  

 

위 <중국전도>에 표시된 지금의 란하 표시 중에서 상.중류 경계부분의 적색 실선은 1875 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청 시기의 란하와 황하를 임의로 연결한 지점이다. 즉 청 시기 란하와 요하는 물론이고 요하로 흘러드는 황하도 란하와는 아무 상관없는 별개의 물길인데 지금의 란하 본류는 청 시기의 란하.황하를 임의 연결한 후 란하 중.하류와 황하 상류를 삭제하고 란하라고 변조한 것이다. 결국 지금의 란하 본류는 청 시기의 란하 상류.황하 중류와 요하 하류가 란하라는 1 물길로 변조된 것이다. 이러한 변조와 이동.위작의 엉터리 지도가 아래의 <아세아동부여지도>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일본공식관찬지도, 일본육군참모국 1875 년 간행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 연구/고지도

 

 

 

따라서 엉터리 <아세아동부여지도>가 정확한 지도가 되려면 아래와 같이 란하.황하.요하가 명확하게 구분.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1875 년 즈음의 조선과 청국 국경 지역의 지리가 위와 같았다는 큰 글이 이조선에 있었다. 즉 이익.이중환 등은 이 땅의 지리가들의 말이라며 백두산 좌향은 해좌사향亥座巳向이라고 전하였다. 때문에 백두산은 이조선 도성인 경도.한양 곧 서울에서 亥 곧 시침 11 시 방향인 지금의 중국 요녕성 노로아호산 중에  표시되어야 하고 그곳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는 지금의 란하 하류 동쪽 지류인 청룡하가 압록강이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아래는 백두산의 해좌사향을 표시한 정확한 이조선 시기의 고지도다.  

 

- 무제목 고지도, 가칭 <백산대맥도>

이조선 영조 26 년(1751) 홍문관에서 간행한 <해동지도>에 실린 것으로 추정되고 한국보물 제 1537- 1,2 호로 지정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원본으로 추정됨.

출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산해관.성경.흥경.오랍.영고탑>

 

 

위 <백산대맥도>가 묘사한 범위는 아래와 같이 대략 삼각형의 흑색 실선 지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아래와 같은 엉터리 해좌사향 표시 고지도를 2007 년 12 월 31 일 보물 제 1537-2 호로 지정했다.

 

 

 

지금의 백두산.선춘령이 해좌사향이 되려면 그 기준지는 한양 도성이 아니라 동해바다 울릉도.독도 쯤에서 나침판을 펼쳐야 되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일본.중국의 머슴이고 식민사관.동북공정 논리를 맹종.선전하는 반민족행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 <중국전도> 표시를 중국 25 번째 정사 <청사고/지리지>의 직예.봉천.길림.흑룡강 4 성 기록과  대조해 보면,

지금의 란하 유역의 흑색 타원형 지역의 지리가 적색 타원형 지역으로 크게 확산.이동 표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재 지리는 1934 년 간행된 <만주국지도>부터였고 <만주국지도>의 조짐은 위의 엉터리 <아세아동부여지도>가 간행된 1875 년 어간이였던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학자들은 게으르고 너무 무식하여 일본이 조작하고 중국이 암묵하는 지리를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잃은 땅을 되찾기는 커녕 식민사관.동북공정의 핵심 논리인 변조.이동조차도 반론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면 이를 어찌 해야 하는가? 

이제라도 일본의 변조를 낱낱이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현 지리를 수긍하는 것도 한심할 지경인데 뜬금없이 낙랑군이 진장성동단과 갈석산이 있는 곳에 설치되었다고 하면 되겠는가? 

중국 역사학자와 정치인에게도 일본의 지리 조작을 증명하고 임정대한민국 땅인 지금의 요녕성 영역의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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