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선 것과 같다. 그리고 대마도와 제주도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했다고 하니, 이는 곧 지관들의 일반론이다.
<성호사설/천지문> 이익(1681~1763)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이다. 해亥 방향에 앉아서 사巳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그런고로 예전부터 중국과 친해 왔다. 그러나, 땅이 좁고 물이 젓어 위인을 낳지 못했다.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 그리고 동호와 여진족이 모두 중원을 제패하고 황제가 된 일이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못해서 주어진 영토만 지키며 감히 뜻을 품어 보지 못했다`라 했다 .
<택리지/복거총론,산수총론> 이중환(1690~ )
<후기 조선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37~38 쪽
위와 같이 이익.이중환이 전하는 지관이나 옛날 사람들이 말한 백두산이 지금의 백두산일까?
아니다.
지금 백두산은 해亥방향이 아니라 축畜방향이다.
- 가칭 <백산대맥도>
이조선 영조 26 년(1751) 홍문관에서 제도한 것으로 추정
2007 년 대한민국 보물 1537 호 지정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원본으로 추정
출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검색명 <산해관.성경.흥경.길림오랍.영고탑>

위 고지도의 추기와 같이 왕성이 있던 지금의 서울을 기준으로 亥 곧 시계 시침 11 시 방향에 백두산이 있어야 한다.

즉 위의 <중국전도> 표시와 같이 해좌사향한 백두산은 지금 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3000 리 쯤 떨어진 지금의 대릉하 중류 조양 북쪽에 표시된 대청산이여야 하는 것이다. 또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흐른 이조선 시기의 국경선 압록강은 지금 란하 하류의 동쪽 지류인 청룡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조선은 물론 대한민국임정의 서북 경계인 압록강은 물론이고 고려와 고구려 시기의 압록강 및 진국발해의 압록강은 모도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들이였다. 또한 화국이 소위 요하문명이라 명명한 문명도 환웅천왕의 고조선과 단군 왕검의 왕검조선 백성들이 일으킨 우수하牛首河문명이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요하.요양.장백산 등의 지리를 주장하는 화국의 동북공정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당연히 허구이고 기만이다.
1927 년 편찬된 청국 정사 <청사고> 지리지 기록은 물론이고 그 이전 편찬된 모든 정사급 지리지 기록과도 당연히 일치하지 않는다. 결국 아래의 적색 실선 화살표와 같이 현재의 모든 지명이 란하 유역으로 복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지리 조작은 1875 년 일국 서향융성이 육군참모국을 동원하여 제도한 엉터리 기획지도 <아세아동부여지도> 간행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일본공식관찬지도라 해설됨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그러나 위 지도는 아래와 같이 청국 란하 상류를 황하 중류로 연결.조작하고 란하라 명명한 후 황하.요하를 동북쪽으로 3000 여 리 씩이동시켜 지금의 서요하와 지금의 요하를 위작한 조작질의 결과물일 뿐이다.

1948 년 건국된 화국은 일국이 조작한 교활한 지리를 근거로 지금의 압록강 북안까지 점거하고 지금의 요하.요양.장백산 등의 지리가 유방이 한漢을 세운 서기전 202 년 부터였다며 지극히 비역사적이고 비양심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즉 동북공정은 역사가 아니라 억지이고 사기이며 대한민국임정의 서북 강역인 지금의 요녕성 전 영역을 반환하지 않으려는 장물아비의 시치미떼기질 일 뿐이다.
'동북공정.식민사관 해체 > 지도조작-식민사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펌- 일본이 위험한 이유 (0) | 2026.07.20 |
|---|---|
| 펌- 1875 년 일국 관원용길이 편찬한 <계몽조선사략>? (0) | 2026.07.20 |
| 식민사관 핵심 논리, 일국 서향융성의 청국 지리조작 수법 (0) | 2026.07.12 |
| 조선 강역 축약을 기획한 서향융성과 하수인들 (6) | 2026.07.06 |
| 이진희의 <광개토왕릉비 탐구> 요약과 해설 (2) | 2026.07.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