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적대에도 우아한 68살 배우 “트랜스젠더인 내가 좋다”

3·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68살 퍼포머·배우 색자 인터뷰

김효실기자
  • 수정 2025-03-31 13:38
  • 등록 2025-03-31 05:00
트랜스젠더 배우 색자가 26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의 한 음식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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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올해 초 26개국 1만8515명에게 ‘친척, 친구 또는 직장 동료 가운데 트랜스젠더가 있는지’를 물은 결과 우리나라 응답률이다. 전체 평균 응답률은 약 14%로 26개국 중 한국이 ‘꼴찌’다. 트랜스젠더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사회적 차별·편견에 맞서 그 존재 자체를 기념하는 ‘세계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3월31일)을 맞아 26일 배우 색자(68)를 만났다. 1980년대부터 트랜스젠더 퍼포머로 살아온 그는, 일흔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를 담은 1인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를 통해 삶 마디마디에 새겨진 세상의 적대와 폭력의 상흔을 날 것으로 내보이면서도 “(트랜스)젠더라는 멋진 이름”으로 살아온 자신을 우아하게 뽐냈다. “내가 어때서? 네가 어때서!” 연극이 상연되는 동안 색자의 삶을 함께 살아낸 관객들은 이 무서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똑같진 않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를 하려니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생각나서….”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색자는 눈물을 보였다. “자신을 감추거나 음지에만 있으려는 친구들” “자살하는 애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기자가 ‘트렌스젠더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기사로 알리려고 한다’고 말하자, 그의 눈빛이 다시 단단해졌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 이런 삶도 있구나’ 느꼈어요. 사회 일반 사람들과 똑같지는 않다는 건 항상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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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때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집을 나왔다. 잡지 ‘선데이서울’을 보며 “나 같은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고 확신해 서울 종로를 찾았다. 22살에 서울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일하며 “끼를 떨어 손님들을 모으니” 어느 순간 사장이 무대를 만들었다. 1983년 ‘동아일보’ 등 언론에 최초로 등장하는 “여장남자들의 술집(게이바)”에서 쇼를 이어갔다.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의 한 장면. 사진 혜정(여기는 당연히, 극장 제공)

 살아남아, 무대에 서다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경찰 단속으로 즉결심판에서 구류 3일 처분을 받았는데 유치장 이동 중 경찰이 유원지에서 더위를 식하는 동안 “까만 닭장차에” 방치된 일도 있었다. “사람끼리는 위아래 없는건데, 화장하고 술 좀 팔았다고 그렇게 대해도 되는 건가요? 그때 질식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표정이 어두워진 색자가 말끝을 흐리다가, 다시 기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살아남아서, 나이 먹어서 나중에라도 그런 인권 유린을 알리라고, (신이) 나를 죽지 않게 해준 게 아닐까요? 그런 무대가 분명 내 앞에 올 거라고(살려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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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에서 성확정 수술을 받기가 어려웠던 시절, 여관방에서 부분마취만 한 채 ‘야매’ 수술을 받기도 했다. 친언니가 곁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거절하고 홀로 버텼다. 지난해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뺨을…”’ 초연을 본 언니는, 글·연출을 맡은 구자혜에게 ‘여관(수술) 장면이 너무 짧다. 그 일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목숨을 건 결정”을 내리고 꿋꿋이 버틴 동생 색자의 용기가 자랑스럽다는 뜻이다. 최근 마친 재연에서는 해당 장면의 분량이 늘었다.

그렇게 살아 남아 연기를 시작한 건 2016년 개봉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 출연하면서 부터다. 딱 한 씬 등장하는 단역이었는데 찍다보니 분량이 늘었다. 2021~2022년 연극 ‘드랙x남장신사’에서는 페도라와 정장을 갖춰입고 드랙킹(성별에 기대되는 모습에 어긋나게 꾸미는 퍼포먼스) 연기·공연을 했다. 1인극 ‘“뺨을…”’은 ‘드랙x남장신사’로 연을 맺고 친구가 된 구자혜 연출과의 대화에서 비롯됐다. 구 연출이 색자의 삶을 글로 만들었는데, 의상·조명·음악 등 공연 곳곳에 색자의 아이디어가 녹아있다. “너네 정말 싸게 노는 거야~” 트랜스젠더 쇼 일부를 극에 포함한 것도 색자의 제안이다. 무대 위 색자는 퀸(여왕)이었다가 킹(왕)이 되고, 염규식(주민등록상 이름)이었다가 다시 색자가 된다. 넥타이를 매고 운동화를 신고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에 맞춰 춤을 추는가 하면, 눈부신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팝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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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의 한 장면. 사진 혜정(여기는 당연히, 극장 제공)

“너희들은 고귀한 존재야”

극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얘기하는 부분은 “최대한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색자는 조례를 처음 읽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 경찰 단속 같은 ‘처벌’은 사라진 시대라지만, 소수자들을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할 제도적 안전 장치는 여전히 미비하다. 학생·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더 취약하다. 색자는 인터뷰 중에도 목멘 소리로 조례 이야기를 했다. “그걸 대체 왜 안 해주려고 하나” 속상해서다.

1인극 ‘“뺨을…”’은 초연과 재연 모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색자는 “내가 뭐 그렇게 특별한 존재도 아니기에” “관객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했다. 구자혜 연출은 “자신의 고통, 자신의 삶 너머를 살피며 다른 존재들을 불러내려고 노력하는” 색자의 매력이 관객에게 전해졌다고 본다. 한 관객은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자신이 트렌스젠더임을 ‘커밍아웃’(공개)하며 색자에게 “고맙다”고 했다. 색자는 공연 틈틈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너희들은 고귀한 존재야. 너희가 없으면 세상이 없을 수도 있어.” 관객석에 다른 이들과 나란히 앉기도 하고, “팁 주세요!” 외치며 관객의 행동까지 끌어낸다. 공연이 끝나고 색자가 공연장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팁’을 건넨 관객도 있다. “(관객이 연극을 보며) 울 땐 울더라도 나갈 때는 시원하게, 환하게(해주고 싶어). 이렇게 살 수 있겠다, 나도 (세상에) 나설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연극 리허설 모습. 사진 혜정(여기는 당연히, 극장 제공)

색자는 트랜지션(지정 성별의 외모, 신체특징, 성 역할 등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춰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주민번호 뒷자리는 ‘1’로 두기로 택했다. 그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를) 대표할 순 없다”고 전제하면서 “완벽한 여자”가 될 수 없고 “(트랜스)젠더 그 자체로 좋다”고 했다. 젊은 시절 색자는 택시 기사들로부터 “(여자로 보이는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면 “어렸을 때부터 창을 해서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색자는 일평생 남자 아니면 여자, 둘 중 하나만 택하라는 사회의 강요를 비껴 살았다. “이제는 택시에서도 그냥 할머니, 아주머니로 봐줘서 더 편해.” 다음 공연 계획을 물었다. 올해 이미 연극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2F’와 ‘드랙x남장신사’ 공연이 예정돼 있다. “자기들아, 그때도 많은 응원 부탁해!(웃음)”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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