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대학 국사학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재단,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등은 물론이고 재야사학계조차도 광복 후 80 여 년 동안 쌓인 문제가 무능한 선거관리위원회보다 훨씬 많다. 

 

식민사관.동북공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체 일본.중국의 주장을 맹종하고 있다. 식민.공정 논리를 비판한다는 재야사학계 역시 비난만 할 줄 알지 제대로 비판할 실력이 없다. 신채호 선생이 왜 고대의 요하는 란하라 했는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애써 외면.무시한다. 그 모든 기관과 연구자들이 소위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의 머슴.노비 노릇을 하고 있다. 

 

환웅천왕의 고조선과 단군 왕검이 세운 조선 곧 <삼국유사/기이>에 부제된 왕검조선이 신화인가?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면 그 흥망지가 지금의 요하 동쪽 지역인가? 

또 고려.이조선 선학들의 역사 인식이 어떻게 식민사관의 빌미가 되었다고 떠벌이는가?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공公부식,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국사는 물론이고 이조선 시기 선학 한백겸.정약용 등이 언급한 평양이 한반도 평양을 지목한 것인가? 

어찌 그리 무지무식하며 선학들 비난질에만 열성들인가? 

 

1875 년 일본명치왕군부가 조선역사를 축약하기 위해 당시의 지리를 조작.기획하였고 그 조작을 뒷받침한 것이 만주국지리였고 만주국지리가 고대부터였다고 주장하는 것이 식민사관인데, 어찌 이조선 혹은 고려 시대부터 후일의 식민사관에 빌미를 제공했다며 상식 밖의 모순된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학자라 자처하는가?   

창피한 줄 알라.

 

-<아세아동부여지도>

1875 년 일본 육군참모국 간행, 일본 공식 관찬지도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일본이 공식관찬지도랍시고 간행했다는 위 지도 표시가 정상인가? 

1875 년 당시 청국과 이조선의 국경선이 지금의 중국 요녕성 영역만큼 떨어져 있었는가? 

그래서 위 지도에 표시된 지금의 요하와 지금의 압록강이 역사 사실이고 2000 여 년 전부터의 지리라고 믿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1875 년 당시 지리는 아래와 같았다.

 

 

위 엉터리 지도에 추기한 해亥.정북正北 표시는 이조선 선학 이익.이중환이 남긴 글 내용을 시각화한 것이다.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선 것과 같다. 그리고 대마도와 제주도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했다고 하니, 이는 곧 지관들의 일반론이다.

 <성호사설/천지문> 이익(1681~1763)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이다. 해亥 방향에 앉아서 사巳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그런고로 예전부터 중국과 친해 왔다. 그러나, 땅이 좁고 물이 젓어 위인을 낳지 못했다.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 그리고 동호와 여진족이 모두 중원을 제패하고 황제가 된 일이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못해서 주어진 영토만 지키며 감히 뜻을 품어 보지 못했다`라 했다 .

<택리지/복거총론,산수총론> 이중환(1690~ ) 

                                                           <후기 조선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37~38 쪽

 

즉 1934 년 간행된 <만주국지도>가 간행되기 전前 중국의 모든 정사급 지리지 기록이나 모든 고지도는 물론이고 이조선.고려 시기 간행.저술된 모든 지리 기록과 고지도에 설명.묘사된 요하는 지금의 란하 중.하류였다.

 

- 가칭 <백산대맥도>

이조선 영조 26년(1751) 홍문관에서 제작 추정,

한국보물 1537 호 지정된 엉터리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원본으로 추정됨.

출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고지도 검색명 <산해관.성경.흥경.길림오랍.영고탑>

 

 

 

즉 위 <백산대맥도>의 도면이 묘사하는 범위는 아래의 흑색 실선 지역을 묘사한 것이다.

 

 

 

결국 지금의 백두산은 <삼국사기/신라본기>에 언급된 토함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고려 시기 송나라 사람들이 인식한 요하는 지금의 란하일까? 아니면 지금의 요하일까? 

 

- <지리도> 1137 년 송인 황상이 각석

 

 

결국 <지리도>에 추기한 염난수.요하는 지금의 란하 중.하류임을 알 수 있고 적색 사각 실선을 확대한 지역은 아래의 적색 사각 실선지역을 묘사한 것임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 참고도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2007 년 12 월 31 일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보물 1537 -1,2 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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