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이란 일본이 청국 동북 지리를 더 동북쪽으로 조작.확산시켜 이조선 강역을 新압록강 남쪽으로 축약한 것이고, 동북공정은 일본의 지리 조작 결과 거저 얻은 장물을 대한민국에 반환하지 않으려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모순으로 가득찬 국사 지리를 제대로 검증해 볼 생각은 않고 일본의 사기질과 중국의 장물 시치미떼기질에 불과한 엉터리 내용을 한국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있단 말인가?
그것이 바로 매국.이적질이고 반민족행위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위 추정도와 같이 명.청 시기 요하는 지금의 란하 중.하류였고 이조선의 압록강은 지금의 란하 최하류의 동쪽 지류였었다. 이러한 지리는 서기전 3 세기 말 준왕조선 시기부터 1932 년 일본 꼭두각시국 만주국이 건국되기 직전까지 약 2100 여 년 동안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1875 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청국의 란하.황하.요하 3 물길을 란하 1 물길로 변조하고 황하.요하를 동북쪽으로 3000 여 리씩 이동시킨 엉터리 기획지도 <아세아동부여지도>를 간행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이후 1932 년 일본이 봉천 지역을 침공한 후 꼭두각시 만주국을 세운 후 엉터리 지리는 공식화되어 2000 여 년 동안 흑수.흑룡강으로 불린 물길이 황하도 아니고 요하의 상류 3 개 지류 중 가장 짧은 서요하가 되었고 이조선 내륙의 슬해 바다를 요하라고 위작해 낸 것이다.

결국 현 중국전도에는 <한서/지리지> 요동군 망평현에 주석된 1250 리 길이 대요수와 현토군 서개마현에 주석된 2100 리 길이 염난수 즉 <청사고/지리지> 직예.봉천 2 성 기록에 설명된 황하潢河.요하가 아예 사라진 것이다.
아래가 일본 육군참모국이 1875 년 간행한 일본공식관찬지도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하지만 1875 년 당시 청국 동북 경계선과 이조선의 서북 지리는 아래와 같았다.

일본이 1875 년 기획.조작한 엉터리 지리는 이조선 시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소급하여 고대 지리까지 규정하였다.



위 추정도 표시와 같은 근거는 서국의 모든 정사급 지리 기록(주1)과 송.명.청 시기 간행된 모든 고지도(주2) 및 이조선 시기 선학들이 인식한 지리(주3)와 홍문관에서 간행한 고지도 가칭 <백산대맥도>(주4) 등 수없이 많다.


(주1)
<한서/지리지>
上谷郡 ... 軍都 濕餘水東至路 南入沽 ... 遼西郡 有小水四十八 幷行三千四十六里 ... 肥如 玄水出東入濡水 濡水南入海陽 ...
遼東郡 望平 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入海 行千二百五十里 ... 玄兎郡 高句麗 遼山 遼水所出西南至遼隧入大遼水 又有南蘇水 西北經塞外 ... 西蓋馬 馬訾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行二千一百里 ... 樂浪郡 呑列 分黎山 列水小出 西至黏蟬入海 行八百二十里
<후한서/군국지>
上谷郡 秦置 洛陽東北三千二百里 ... 遼東郡 秦置 洛陽東北三千六百里(一) ... (一)魏氏春秋曰 縣北有小水 南流入海 句麗別種 因名之水小水貊 ... 玄兎郡 武帝置 洛陽東北四千里 ... 樂浪郡 武帝置 洛陽東北五千里
<삼국지/동이열전.왜倭>
倭人在帶方東南大海中 ...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渡一海 千餘里至對馬國 ... 又南渡一海名曰澣海 至一大國 ...又渡一海千餘里至末盧國 ... 東南陸行五百里到伊都國 ...
<명사/지리지>
北平行都指揮使司
本大寧都指揮使司 洪武29年9月置 治大寧衛 ...領衛10.....西南距北平布政司八百裏 ...
大寧衛...治大定縣 ...洪武20年8月置衛 9月分置左右中三衛 尋又置前後2衛 28年4月改左右後3衛爲營州左右中3護衛...南有土河...
營州前屯衛 元興州屬上都路...南有老河 源出馬孟山流經此 又經行都司城南 東北入於潢河...
<청사고/지리지>
직예성 ...
獨石口 明初爲開平衛 順治初爲上北路 隸宣府鎭 東北二百五十裡 康熙中置縣丞 曰獨石口...東南有大小石門山太保山白河古沽水...下流會潮楡諸水爲北運河 上都河古濡水 出口東北巴顔屯圖固爾山 合三道河 西北入多倫口下流爲滦河至樂亭入海 行二千一百裡有奇...
조양부 ... 明 營州衛...置朝陽縣 光緖30年(1904)以墾地多熟 升府 以建昌隸之... 西南距省治1420裡... 西北潢河自內蒙古阿魯科爾沁旗入 西南大凌河自建昌入 合南土河 逕西平房西 左合卑克努河 察罕河 又東合布爾葛蘇台河 又東至龍城 一曰三座塔城 左合固都河 凉水河至金敎寺東北 左合土河 入盛京義州
건창현 府西南260裡... 東有布古圖山 漢白狼山 白狼水出焉 今曰大凌河 ... 東入朝陽... 北有潢河自赤峰入 會老哈河 河
自平泉入 合伯爾克河 錯出復入 英金河亦自縣來會 復合落馬河 東北至穀口 乾隆8年(1743) 更名敖漢玉瀑 與潢河會 又
東入朝陽 柳邊北首朝陽 南訖臨楡 ...
적봉직예주 ...西南距省治1320裡...領縣1 潢河自圍場入 州北200餘裡之巴林旗 東南老哈河 自平泉逕東南隅 納伯爾克河 北入建昌 英金河古饒樂水 三源自圍場入...
길림성...
吉林府 ... 雍正五年置永吉州隸奉天 乾隆十二年改吉林口 ... 光緖八年升爲吉林省治 ... 西南至京師二千三百裡 距盛京八百二十餘裡 ... 東團山尼什哈龍潭 西南溫德亨亦望祭山 有殿祀長白 ... 東南松花江自額穆入 右合海靑溝 左溫德亨河 東北逕城東 又北 右合莽牛 ... 西南驛馬河 卽伊勒們 ... 城北七十裡本烏拉國 舊曰布特哈烏拉 太祖先後克其宜罕山臨河金州遜紮塔諸城 遂平之 柳邊四圍長六百二十二裡 柵高四尺...
長春府 ... 省西二百四十裡 ... 古扶餘國地 ... 曰寬城子 ... 西南白龍駒山 俄築東淸鐵路采石 ... 西龍泉 ... 東北緣農安界 ... 東驛馬河自雙陽緣界
南入伊通門達其州 東南十裡堡達雙陽 西萬家橋達奉天懷德 北萬寶山鎭達農安 ... 吉長鐵路自吉林歷德惠入 ... 在府西北餘東淸接 日俄戰後 長春以北屬俄之東淸 以南屬日本南滿鐵道會社 俄站寬城子 曰長春驛
農安縣 ... 省西北三百六十裡 古扶餘國都 明置三萬衛 ... 東臥牛石山 ... 東松花江 ...
長嶺縣 ... 省西北五百二十裡 ... 南 ... 團山境無河流 北有大漠如澣海 俗呼北海 ... 冬夏恒苦風沙 ... 西北至奉天開通
雙陽縣 ... 省西百九十五裡 明依爾們 蘇完河二衛 析吉林西界長春東界伊通北界置 治蘇斡延 ... 放牛... 南皇營
- 조선 영토 ` 동서 이천리 남북사천리` 기록된 명.청 시기 대표적 문헌
①『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1461) ② 『수역주자록(殊域周咨录)』(1574) ③ 『함빈록(咸宾录)』1598, ④ 『황명경세문(皇明經世文)』 (1643) ⑤『명사기사본말(明史紀事本末)』(1658) ⑥『대청일통지(大清 一統志)』 1743, ⑦『사고전서(四庫全書) 조선부(朝鲜赋)』(1781) ⑨『사고전서 외사이관고총서(外四夷馆考总叙)』(1781) ⑩『사고전서 정계양잡저(鄭開陽雜著) 조선도설(朝鮮圖說)』(1781) ⑪ 『광여도전서(廣輿圖全書)』(1785) ⑫『동번기요(東藩纪要)』 (1882)
(주2)
-<대청광여도>


(주3)
<성호사설/천지문> 이익(1681~1763)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선 것과 같다. 그리고 대마도와 제주도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했다고 하니, 이는 곧 지관들의 일반론이다.
<택리지/복거총론,산수총론> 이중환(1690~ )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이다. 해亥 방향에 앉아서 사巳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그런고로 예전부터 중국과 친해 왔다. 그러나, 땅이 좁고 물이 젓어 위인을 낳지 못했다.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 그리고 동호와 여진족이 모두 중원을 제패하고 황제가 된 일이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못해서 주어진 영토만 지키며 감히 뜻을 품어 보지 못했다`라 했다. <후기 조선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37~38 쪽
<규원사화/단군기.1세 왕검>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 서남쪽 우수하牛首河 들에 세우고 임검성이라 했다. 지금의 만주 길림 땅 속말강 남쪽의 소밀성蘇密城이 곧 그 땅이다. ... 소밀蘇密.속말速沫.粟末은 모두 `소머리`란 뜻이며 음이 서로 비슷하다.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거의 와전되었으나 그 뜻은 잃지 않았다. ... 이명李茗이 말하기를, `속말수 북쪽에 발해 중경 현덕부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단군이 처음 도읍을 정한 곳이기 때문에 임검성 곧 평양이라 했다. 북으로 상경 홀한성을 가려면 육백 리이다.
<조선상고문화사> 4장1. <진개의 입구와 고죽.선비 등 지의 잃음> 신채호
고대의 요하는 란하라 고로 연의 말세에 요서.요동군을 둘 때에 영평부가 요서가 되고 그 이동이 요동이 됨인즉, 요동도 요서의 비례로 그 범위가 산해관에 지나지 못하였을 지니 ...
<환단고기/북부여기上> 임승국역주
기해38년(서기전195년) 연나라의 노관이 다시금 요동의 옛 성터를 수리하고 동쪽은 패수로써 경계선을 삼으니 패수는 곧 오늘날의 란하다.
(주4)
- 가칭 <백산대맥도>
한국보물 537-1,2 호로 지정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원본으로 추정
출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고지도, 검색명 <산해관.성경.흥경.길림오랍.영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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