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당군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격파한 이후의 서쪽 경계는 아래 왼쪽 추정도와 같이 지금의 란하 하류였다.
즉 당시의 대요수가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 지금의 란하 중류였다.

그 이유는 서국의 한.진.위.수.당의 정사 지리지에 설명.기록된 대요수 곧 당 말기 쯤부터 개칭된 황하潢河가 지금의 란하 중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지리는 고려.이조선은 물론 대한제국 멸망시까지도 변동이 없었다.


따라서 한국사학계의 주장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며 극히 무지무식한 지리 인식이다. 당연히 반민족적일 뿐만 아니라 일본.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적행위인 것이다.
한편 서국의 한漢.진晉.수隋.당唐.송宋.명明.청淸 시기의 황하 또는 요하가 지금의 요하이고 고구려.고려.이조선 시기의 압록수가 지금의 압록강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육군참모국이 일본공식관찬지도라며 아래의 <아세아동부여지도>를 간행한 1875 년부터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그러나 일본이 봉천군벌 장학량 영역을 침공한 1932 년까지도 요하는 지금의 란하 중.하류였었으니 <아세아동부여지도>는 엉터리 기획지도였던 것이다. 아래의 청국 고지도 <경판천문전도>와 비교하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경판천문전도>
1790 년경 청국인 마군량이 제도

위 고지도에 묘사된 황하.요하 위치가 조금 더 명확하게 묘사된 고지도가 아래의 <지리도>이다.
-<지리도>
1137 년 송인 황상이 각석

위와 같은 서국의 고지도 묘사는 이조선 영조 26 년 (1751) 홍문관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아래의 고지도도 증거한다.


또한 위 국경 지도는 아래의 지역을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란하.황하.요하.혼하.압록강 표시는 명.청 시기의 모든 지리 기록과 고지도에 근거한 것이다.

결국 지금의 요하가 지도에 공식적으로 표시된 것은 1934 년 간행된 <만주국지도>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세아동부여지도>가 간행된 1875 년 당시의 이조선 강역도 아래와 같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조선 시기의 강역 곧 서쪽 경계가 위와 같이 지금의 란하 하류까지였기 때문에 이익.이중환도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긴 것이다.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선 것과 같다. 그리고 대마도와 제주도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했다고 하니, 이는 곧 지관들의 일반론이다.
<성호사설/천지문> 이익(1681~1763)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이다. 해亥 방향에 앉아서 사巳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그런고로 예전부터 중국과 친해 왔다. 그러나, 땅이 좁고 물이 젓어 위인을 낳지 못했다.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 그리고 동호와 여진족이 모두 중원을 제패하고 황제가 된 일이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못해서 주어진 영토만 지키며 감히 뜻을 품어 보지 못했다`라 했다 .
<택리지/복거총론,산수총론> 이중환(1690~ )
<후기 조선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37~38 쪽
또한 단재 신채호도 아래와 같이 설명했던 것이다.
“고대의 요수(遼水)는 란하(灤河)라. 고로 연(燕)의 말세에 요서군(遼西郡), 요동군(遼東郡)을 들 때에 영평부(永平府)가 요서(遼西)가 되고 그 이동(以東)이 요동(遼東)이 됨인즉, 요동(遼東)은 요서(遼西)의 다음으로 그 범위가 산해관(山海關)을 지나지 못하였을지니, 어찌 진개(秦開)가 벌써 요양(遼陽)·해성(海城) 등지까지 차지 하였으리오. 고로 만반한(滿潘汗)을 한하였다 이천리(二千里)를 차지하였다 함은 다 황설이다.” <조선상고문화사>
- 단재가 인식한 청나라 영평부와 전한 요동군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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