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중국전도>, 1934 년 이후 지리 

 

 

- <1934 년 이전 지리추정도>

 

 

위와 같이 1934 년을 전후한 지리가 다르다는 근거는 1932 년 일본이 꼭두각시국으로 건국한 만주국의 지도 <만주국지도>가 1934 년 간행되었는데 이 <만주국지도>부터 요하가 지금의 요하로 처음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1934 이전 지리추정도를 방증하는 송.명.청 시기의 고지도가 중국에는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아래의 <경판천문전도>일 것이다.

 

- <경판천문전도>

청국인 마군량이 1780 년대 간행

 

주) 적색실선은 이조선 시기 사신들의 육로 로정으로 북경에서 산해관까지는 680 리, 광녕까지 1180 리, 요양까지 1450 리,의주가지 1990 리였음( 1656 년 진주정사 인평대군의 <연도기행> 참조)

 

 

위와 같은 1934 년 이전의 지리를 현재의 중국전도에 표시하면 당연히 아래와 같아야 한다.

 

 

 

한편 1910 년 압록강을 건너 청국으로 망명한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문화사>에서 `고대의 요하는 란하` `패수는 해성의 헌우락`이라 하였고 또 1910 년 대 압록강 북쪽 기슭에서 <환단고기>를 엮은 연수 계인경은 범장이 저술했다는 <북부여기>의 본문에 자신의 지리 인식인 `패수는 금 (1910 년대로 추정-필자) 란하` 구절을 넣었다.

 

그러면 왜 두 선학은 명징하게 설명하지 않고 알쏭달쏭한 구절만 남겨놓았을까?

 

그들이 그렇게 밖에 선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1910 년대 당시에도  <1934 년 이전 지명추정도>와 같이 지금의 란하 중.하류가 분명히 요하임에도 불구하고 란하라는 풍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러한 풍문이 돌게 된 원인은 아래의 엉터리 지도 <아세아동부여지도>가 1875 년 간행된 후 대대적으로 선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아세아동부여지도>

1875 년 일본 육군참모국 간행, 일본공식관찬지도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하지만 위 <아동도>에는 아래 추기와 같이 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아래와 같이 청색으로 표시한 서기전 202 년 한나라가 설치한 유주 소속의 어양.우북평.요서.요동 4 군 위치를 일본이 1934 년부터 적색 표시의 위치라고 지도를 조작한 것이다.  

 

 

 

위와 같은 지리 조작이 식민사관의 근저를 떠받치고 있는 단 하나의 유일한 핵심 논리이고, 동북공정도 위 조작을 단지 암묵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1945 년 일본이 패망한 후 엉터리지도 <만주국지도> 표시에 근거하여 지금의 압록강.두만강까지 점거한 중공은 이조선의 서북강역 곧 장물땅을 반환하지 않으려는 장물아비의 심정으로 기를 쓰고 고대부터 요하는 지금의 요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삼국유사/기이>에 부제된 환웅천왕의 신시 고조선과 단군 왕검이 개국한 조선 곧 왕검조선 및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설명된 고구려의 강역도 아래와 같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중국이 자국 문명이라 주장하는 요하문명도 당연히 고조선과 왕검조선이 이룩한 문명일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이후에도 단군부여.진번.고구려.진국의 중심 강역이였으머 삼통신라.고려.이조선의 북계 지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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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 년 이전 지명추정도에 적색으로 표시한 해亥 글자에 대한 해설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선 것과 같다. 그리고 대마도와 제주도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했다고 하니, 이는 곧 지관들의 일반론이다.

 <성호사설/천지문> 이익(1681~1763)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이다. 해亥 방향에 앉아서 사巳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그런고로 예전부터 중국과 친해 왔다. 그러나, 땅이 좁고 물이 젓어 위인을 낳지 못했다.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 그리고 동호와 여진족이 모두 중원을 제패하고 황제가 된 일이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못해서 주어진 영토만 지키며 감히 뜻을 품어 보지 못했다`라 했다 .

<택리지/복거총론,산수총론> 이중환(1690~ ) 

                                                           <후기 조선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배우성 37~38 쪽

 

 

- 해亥.정북正北이 표시된 이조선 시기 간행된 고지도

  이조선 영조 26 년(1751) 홍문관에서 간행한 <해동지도>에 실린 것으로 추정되면 대한민국 보물 제 1537 호로 지정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원본으로 추정됨.

 

 

- 이조선 강역을 정확하게 묘사한 유일한 서양지도

 <인도와 중국지도>

1750 년 프랑스인 기욤 드릴이 네덜란드에서 간행

출처: 대한민국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홈페이지/연구/고지도

 

 

이조선의 서.북쪽 국경 지리가 위와 같았음에도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아래와 같은 엉터리 지도를 보물로까지 지정했다.

 

- 대한민국 보물 제 1537-1,2 호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2007 년 문화재청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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