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고구려 정통성의 허구
- <무제목국경도> 이조선 영조 26 년 편찬된 <해동지도>에 실렸을 것으로 추정.
소장: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고지도/ 제목- 산해관.성경.흥경.길림오랍.영고탑
----------------------------------------------------------------------------------------------------------
2005. 7 . 2
최성재
[신라의 정통성에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때는 언제인가]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한국의 온갖 문제점을 찾아내려는 환원주의자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사대주의와 패배주의와 일제식민지배와 분단과 군사독재를 몽땅 신라에게 돌리고, 고구려를 숭상하며 중국과 일본을 압도하는 동이족의 대제국을 꿈꾼다. 그러면서 스스로 국가의 통일을 위해 하는 일은 16살 관창이 한 것의 100분의 1도 않는다. 말만 우렁찰 뿐이다. 혀만 날카로울 뿐이다.
한국인 스스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욕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의 일이다. 불과 100년도 안 된 일이다. 단재 신채호의 민족사관에 따른 것이다. 일제하에서 그것은 한국인에게 자부심과 희망을 주기도 했지만, 해방 후에는 미래에 대한 환상과 과거에 대한 환멸을 심어 주는 역할이 커서 이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아야 하는데, 이것이 한국에는 재야의 민족사관으로, 북한에는 주체사관으로 계승되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남북 국수주의자들의 의기투합]
제일 큰 문제는 한국의 자칭 민주세력 중 일부가 좌경화되면서 김일성의 가문을 회칠하기 위해 만든 주체사관을 맹종하는 것이다. 북한이 한국에 대해 허무맹랑한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단지 지역적 위치가 옛 고조선과 고구려 땅의 일부임을 근거로 터무니없이 신라를 욕하고 고조선과 고구려를 높이 받드는 것에 엔돌핀이 솟아나서, 그들은 김일성의 독립투쟁과 친일청산, 평등 사회 구현 등을 곧이곧대로 믿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정통성과 업적을 매질하고 짓밟는 데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김구와 장준하를 신처럼 떠받들며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통성과 업적을 찬양하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이들 자칭 남북의 ‘정통’ 민족세력들은 외세를 배제하고 내부의 사대주의자와 수구보수세력을 거꾸러뜨리고 남북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고구려는 신라에 통합되어 오늘에 이름]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제멋대로 역사를 고쳐 쓰는 지극히 유치한 수작들이다. 고구려는 70년에 걸쳐서 400년 만에 중원을 통일한 두 제국 수와 당을 상대로 20세기의 두 세계대전에 못지 않게 큰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자국만이 아니라 신라와 백제도 지켜 주었지만, 마침내 힘이 고갈되어 멸망했다. 역사적 임무를 충분히 다한 것이다. 고구려는 한민족의 긍지이다.
(고구려 멸망의 직접적 원인은 외교 실패였다. 이 외교실패는 오늘날 북한이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이 어리석은 행렬에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이 구국의 일념으로 가담하고 있다.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당으로 원군을 청하기 전에 642년 김춘추가 연개소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연개소문은 신라의 생명줄인 한강유역을 되돌려 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로 보기 좋게 거절하고 왕족인 그를 아예 감금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춘추는 거짓 약속을 하고 풀려난 다음에 고구려의 갖은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직접 서해를 건너가 당의 군사를 빌려 올 수밖에 없었다. 당도 645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참담하게 패한 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에 신라와 손을 잡았던 것이다.
환단고기에 연개소문이 김춘추에게 삼한일체론을 들먹이며 고구려가 수나라와 싸울 때 한강유역을 고구려에게 주고 기다렸다가 중원의 당을 빼앗아 분리지배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씌어 있다는데, 이건 전혀 앞뒤가 맞지 않은 허구이다. 왜냐하면 김춘추가 찾아갔을 때 수나라는 망한 지 28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강한 연개소문은 세계와 미래를 보는 눈이 흐릿했던 데다가 강국 고구려에 대한 자만 때문에 고구려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고, 약한 김춘추는 세계정세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밝았던 데다가 신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겸손과 마음속으로는 누구에게도 머리를 굽히지 않는 자존심과 호랑이 굴도 맨몸으로 찾아가는 용기 때문에 삼한일통의 기틀을 마련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은 후 그 아들들간의 내분으로 너무도 우습게 망한 후에 그 지배족은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한족에 흡수되거나 유민들과 함께 신라로 귀순했다. 그리고 일부는 발해를 세웠다. 발해가 멸망하면서 대거 고구려 후손은 고려로 귀순했지만, 나머지는 요와 금이 세워지면서 우리 역사에서 멀어졌다. 다시 말해서 발해까지는 만주가 우리 역사의 현장이었지만, 발해의 멸망 이후는 고려 땅에서만 신라, 백제, 고구려의 세 나라 후손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단일민족을 형성했기 때문에, 만주는 싫든 좋든 우리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만주가 우리 땅이라면 일본도 우리 땅인가]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게 일본이지만, 중국의 재통일과 신라의 삼국통일, 발해의 건국과 더불어 일본도 독립왕국을 세웠기 때문에, 만주가 우리 역사에서 떨어져 나갔듯이 일본도 우리 역사에서 떨어져나갔다. 고구려를 생각하며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이불 속에서 고함을 지르고 싶으면, 그 기개 그대로 일본도 우리 땅이라고 현해탄을 바라보고 소리소리 질러 보라. 지나가던 개도 단박에 정신병자임을 알아보고 비웃을 것이다.
[역사 결정론의 함정]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역사 가정의 환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한 번의 역사적 사건으로 그 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역사 결정론의 함정에 스스로 빠진 자들이다.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그 후 우리나라는 중국과 늘 맞먹거나 중국을 압도하거나 중국을 종의 나라로 한 1000년 부려먹었을 거라는 달콤한 환상에 젖는다. 돈키호테 수준의 코미디다.
그러면, 대제국 로마는 왜 멸망했으며, 멸망한 후 무려 1400년이 되어 이태리는 겨우 통일했는데, 그것도 기껏 로마제국의 광대한 영토는 어디 두고 이태리 반도만 간신히 차지했을까.
그 강대하던 당 나라는 왜 망했으며, 송은 왜 요와 금과 원에 시달리다가 끝내 멸망하고 중원을 원이 차지했을까. 원은 왜 100여년 만에 망했을까. 원을 물리친 명은 왜 옛날에 고구려의 한 피지배족에 불과했던 만주족에게 멸망했을까. 그 어떤 나라든 흥망성쇠를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신라는 600년 내전을 종식시켰다]
신라는 엄청나게 큰 일을 했다. 뛰어난 군사외교적인 안목으로 세계 최강의 당과 손을 잡아 사비성과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본색을 드러내는 당과 무려 8년에 걸친 국가 총력전으로 중국인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쫓아냈다. 당이 물러난 것은 토번과의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 태종이 내전에 시달리느라 싸움 한 번 못하고 돌궐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에, 마침내 힘을 길러 북쪽과 서쪽의 오랑캐를 완전히 섬멸해 버렸기 때문에 고구려 외에는 당을 위협할 나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국경 지대를 노략질하는 정도였던 것이다.
신라가 한 일 중 가장 빛나는 것은 600년 내전 종식이다. 단군의 자손끼리 600년에 걸쳐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피를 흘리던 전쟁을, 동족상잔을 후삼국 시대와 6 동란 때 외에는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린 나라가 신라였던 것이다. 1300년 평화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한민족은 위대한 신라 덕분에 외국과의 전쟁 외에는 전쟁이란 것을 모르고 살게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 어떤 민족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의 민족으로 거듭났다. 국경 지대의 약탈을 빼면, 외국과도 큰 전쟁은 통일 신라 시대 이후에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통일신라시대는 당을 내쫓은 후 국가간의 전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큰 전쟁은 고려 때에 제일 많았다. 요나 원과 큰 전쟁을 치렀고 왜구의 잦은 약탈에 시달렸다. 그러나 원과의 전쟁 외에는 모조리 승리했기 때문에 고려는 민족적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조선도 500년 동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잇달아 겪은 16세기 말 17세기 초 외에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신라가 일찌감치 통일 국가를 이룬 덕분이다. 일본시대에 한국인을 열등감에 시달리게 하기 위해 일본의 역사가들이 과장해서 935회니 뭐니 하면서 국경에서 말 한 마리 잃은 것까지 다 포함하여 전쟁 횟수를 엄청 늘려서 마치 우리나라가 수천 년 동안 이민족에게 시도 때도 없이 시달렸던 것처럼 세뇌했는데, 아직도 이를 철석같이 믿고 우리나라를 업신여김을 자랑삼는 한국인이 너무도 많다. 그러면서 ‘한민족이 최고야’를 되뇐다. 중증의 도착 증세다.
[만주를 되찾지 못한 것은 고려와 조선과 북한의 책임]
만주를 되찾지 못한 것은 신라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고려의 책임이요, 조선의 책임이다. 왜 그 비난을 신라가 덮어써야 하는가. 신라는 원래 땅을 3배 이상 늘렸다. 그러나 고려는 신라가 물려준 땅의 10분의 1도 넓히지 못했다. 조선도 세종대왕 때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한 이후 땅을 한 뼘도 넓히지 못했다. 한국과 북한은 더하다. 순전히 미국의 힘으로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났지만, 초등학교만 나와도 너도나도 입만 열면 신라를 욕하지만, 간척한 것 외에는 땅을 넓힌 것도 없고 통일도 우리 힘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평화통일하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결국 통일도 미국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신라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북한은 코미디 공화국-그러나 아무도 웃지 못한다]
북한은 웃겨도 보통 웃기는 게 아니다. 협동농장만 해체하면 당장 한 명도 안 굶겨 죽일 수 있고, 필리핀이나 인도나 멕시코처럼 북한 주민을 아무런 간섭하지 말고 외국으로 내보내 달러를 벌어서 조국으로 송금하게만 해도 중국 부럽지 않게 살 수 있고, 원자탄 개발하는 돈과 김일성 동상 만들고 관리하는 돈만 풀어도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오로지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구려 정통성’이니, ‘주체의 나라’라느니, ‘지상낙원’이라니, ‘우리는 행복해요’라느니, 하면서 적화통일을 달성하여 너무너무 잘 사는 한국을 집어삼킬 궁리만 하고 있다.
한국의 이승만이 미군의 대위로 집권했다고 해 보자. 한국인들과 북한 공산당은 얼마나 길길이 뛸 것인가. 이승만이 김일성보다 독립운동을 100배나 했지만, 이승만의 독립운동은 간 데 없고 아무리 내세워 봤자, 90% 국내 갑산파의 도움으로 함경도의 벽지 보천보에서 꾸벅꾸벅 졸던 일본 순사 몇 명 죽인 것을 마치 100만 일본대군을 물리친 듯이 ‘피바다’ 가극을 만들고 김일성 혁명역사를 날조하여 독립운동을 저 혼자 다한 듯이 60년을 한결같이 북한주민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뼛속까지 절은 사대주의자]
김일성만큼 사대주의에 뼛속까지 절은 자가 없다. 그런 자일수록 주체사상을 내세운다. 일본헌병의 자손이 친일파 척결에 앞장서서 독립군의 후손인 척하는 거나 마찬가지 심리이다. 소련군에 빌붙어 정권을 잡았을 뿐 아니라 그는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애걸하여 그들의 무기와 작전으로 소련의 힘을 빌려 인민군을 창설하여 동족상잔을 일으켰다. 이런 자가 신라가 당의 힘을 빌려 통일한 것이 사대주의라고 이를 바득바득 간다. 한국의 지식인 중에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런 자들이 득실거린다. 군대와 외교를 전혀 모르는 자들이다.
북한이 고구려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으면 한국이 아니라 만주로 쳐들어가야 한다. 한국을 삼키기 위한 속셈을 감추기 위해 마치 미국과 전쟁을 벌일 듯이 60년 동안 줄기차게 해 대는 헛소리는 제발 그만하고 만주로 쳐들어가서 간도와 백두산이라도 찾아오면, 한국도 기꺼이 도와 줄 것이다. 중국을 상대로 전쟁한다는 것은 이불 속에서도 그런 생각을 못한다. 철두철미한 사대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온상은 북한]
졸고 ‘한국의 일제청산과 북한의 일제계승’에서 자세히 밝혔듯이 친일파청산도 겉과 속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한국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친일청산을 확실하게 했다. 반민특위 유산이라는 것 하나만 갖고, 한국의 정통성을 짓씹고 북한의 정통성을 흠모하는 자들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공부는 죽으라고 안 하고 누가 일러 준 정답만 달달 외면서 귀를 틀어막고 눈을 부라리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니까.
[정통성은 유교의 잔재]
정통성에 목을 매는 것은 유교 문화의 잔재이다. 자신과 비슷한 무리가 정치든 학문이든 언론이든 권력을 잡기 위해 내세우는 가면일 따름이다. 실은 한국이나 북한이나 권력이 곧 정통성이다. 권력만 잡으면 제멋대로 스스로 정통성을 독점한다.
공자도 이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를 멸망시킨 탕왕과 은을 멸망시킨 주공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인 것은 잘못이나 그 후에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고 예를 확립한 것은 잘못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버린 군주는 하늘이 버린다고 보고, 천명이 바뀌었다고 하여 탕왕과 주공을 정당화하고 그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도 그 이상은 내다보지 못했다. 춘추시대는 다시 주 왕실을 중심으로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그것이 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후에 맹자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과감히 혁명을 옹호했다. 그는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예가 필요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그 정도에 그쳤다.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무기체제의 발달, 그리고 인구의 증가 등으로 왕도정치만으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가 없었다. 제자백가가 다 필요했다. 특히 중원의 400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강력한 군대와 새 시대에 맞는 행정체계를 구축할 법가의 사상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한의 정통성: 공자의 덕치와 진시황의 법치가 결합하다]
마침내 천하의 인재를 우대하고 이상적 덕치보다 현실적 법치를 앞세운 진이 중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법이 만능이 아니었다. 유방이 세운 한이 비로소 400년 평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하은주의 제도인 봉건제에서 예로 상징되는 덕치에 곧 공자와 맹자의 덕치에 진시황의 군현제에서 실현된 법치를 합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봉건제와 군현제를 합친 군국제이다.
비로소 정통성 문제가 일단락된 것이다. 천하대란을 종식시키고 백성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고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살게 한 군주가 곧 정통성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피를 이어받은 자가 곧 정통성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도 폭군이나 암군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되고 천하대란이 일어나면, 정통성은 또 오리무중으로 빠져든다.
[오랑캐에게 400년이나 지배당한 한족의 정통성 문제]
중국인들이 그 후에도 정통성 문제로 정신적 공황을 겪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한번은 몽골족의 원이고 또 한 번은 만주족의 청이다. 도합 400년을 한족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도대체 누가 정통성을 주장할 것인가. 이 때 나온 것이 송의 성리학이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시대착오적이었다. 이민족에게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고도 송의 성리학자는 끝내 정통성은 한족에게만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송은 물론 당이나 한보다 위대한 원의 치세를, 징기스칸이 자신도 법의 아래에 있다고 함으로써 오늘날의 중국 못지 않은 법치를 확립한 원의 치세를, 보통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만 해도 2만개가 넘었던 근대국가와 가장 흡사한 원의 빛나는 치세를, 그들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한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착오적인 성리학적 정통론은 원이 멸망한 후 명에서도 부활되었다. 그런데 그 명이 가렴주구로 백성을 개돼지 취급하다가 또 한 줌밖에 안 되는 만주족에게 무릎을 꿇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정통성이 있는가. 모택동에 의해서 한족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중국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만주를, 당이 신라와 힘을 합쳐 평양을 함락한 후 안동도호부니 뭐니 하면서 잠시 거들먹거렸지만,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과 힘을 합쳐 악착같이 덤벼드는 신라한테 8년간 시달리다가 끝내 쫓겨나고 당과 신라가 싸우는 사이에 힘을 기른 대조영이 당에게 반기를 들고 발해를 세우면서, 겨우 요서 땅을 차지했을 뿐 중국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만주를, 만주족에게 약 300년간 지배당한 덕분에, 인구가 너무 적었던 만주족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만주를 공짜로 얻어서 중국을 통일한 후에 중국은 또다시 정통성 문제에 봉착했다.
[중국의 모든 통일왕조에 정통성을 부여한 중국]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봉건귀족을 물리치고 공산당이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했기 때문에 공산당의 최고 우두머리가 당연히 정통성을 갖는 것이었다. 이전의 왕조와 다른 것은 세습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산당 안에서 지도자가 나오면 된다. 그러면 원과 청의 정통성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도 한당송명과 똑같이 정통성을 갖는다. 통일왕조는 모조리 정통성을 갖는다. 공산당보다는 한 단계 아래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 역사의 많은 부분과 중국의 많은 지역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서북공정이니 동북공정이니 하면서, 역사에 등장하는 중국 주변의 모든 나라와 민족을 중국에 편입시킨다. 고구려까지 자기 나라요, 자기 역사라고 주장한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북한과 한국까지 변방의 역사로 집어넣을 속셈이다. 중화주의가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두고 볼 일이다.
이처럼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특히 등소평 이후에 전통을 정통성 못지 않게 중시하고 있다. 모택동 치세에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다가 국가가 거덜난 후에 크게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한민족의 정통성]
중국에 비하면 한국의 정통성은 아주 단순하다. 35년간의 일제시대 외에는 같은 민족끼리의 지배와 피지배였으니까. 고려 말기에도 우리나라는 원의 간접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왕조도 겨우 신라, 고려, 조선 셋밖에 없다. 문제는 정통성 에 대해 처음부터 시대착오적이었던 성리학을 조선시대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데 있다. 융통성이 전혀 없다. 그것은 현대의 남북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정권 잡은 자가 장땡이다.
[정통성의 핵심은 국민]
중국이나 한국이나 다른 나라나 정통성의 해답은 이미 5000년 전에 답이 나왔다. 백성을, 국민을 잘 살게 하는 정권이 정통성이 있다. 정치는 결과지 동기가 아니다. 말로는 국민을 다 같이 잘 살게 한다고 하고선 국민을 80% 거지, 10% 죄수, 10% 도둑으로 만든 정권은 정통성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북한은 북한주민을 세계에서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으니까, 전세계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5000년 역사상 정통성이 가장 적은 정권이다. 대신에 한국은 해방 당시 아프리카의 가장 못 살던 나라보다 못 살았던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굴지의 민주 국가로 끌어올렸으므로 대부분의 역대 국가 원수는 정통성이 있다. 있어도 대단히 많이 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저 혼자 잘난척하는 정권이 더 문제다. 경제든 정치든 이전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면 누구나 박수를 칠 것인데, 하라는 일은 않고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는 일에, 잘난 남을 헐뜯는 일에, 앙심을 품은 과거사 캐는 일에만 열중하고, 주자학에 정신적 노예가 되어, 동족을 학살하고 굶겨 죽이고 개돼지 취급하는 데 크나큰 희열을 느끼는 북한의 정권에 정통성 콤플렉스를 갖는 정권이 가장 큰 문제다.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역사는 이들에게서 정통성을 완전히 박탈할지 모른다. 예나 제나 정통성의 기준은 안보와 경제 곧 부국강병이기 때문이다.
(2005.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