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계연수의 지리 인식으로 돌아가라
신채호는 고대의 요하는 란하라 하였고 계연수도 란하를 패수라 하였다.
한국사학계는 물론이고 소위 재야사학의 어느 누구도 저 두 문장을 올바로 해석해 내지 못한다.
왜일까?
역사 관련 기초 지식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북경대학에서 고조선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북조선 리지린조차도 신채호가 언급한 해성의 헌우락이 패수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 지금의 중국 요녕성 해성현에 흐르는 물길이라고 주장한다. 해성현은 요하 중류 동쪽 강변에 설치된 현 명칭이고 그 요하가 란하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금의 요하 하류 동쪽 강변에 표시된 지금의 해성현 지역을 흐르는 물길이라고 해석을 하나?
청국 시기 북경에서 동쪽으로 680 리 떨어졌다는 산해관이 지금의 산해관 위치인가? 북경에서 1180 리 떨어진 의무려산과 광녕이 지금의 북진 위치인가? 또 그 산해관 동쪽의 바다는 바다가 아니라 구하가 둘러빠진 곳 곧 발해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요하의 최하류이며 입해처라고 연경을 드나들던 이조선 사신 인평대군이이 설명을 했어도 한국인들은 지금의 산해관 위치가 맞고 산해관 동쪽의 지금의 요동만 바다를 요하의 최하류이며 입해처라고 해석한다. 참으로 바다와 같이 너그러운 발상이다.
일본명치왕이 1873 년 청국의 란하.황하.요하를 삭제.연결.이동 등의 변조 수법을 동원하여 동쪽으로 뻥튀기식 조작지도를 간행하였고 그래서 산해관도 동쪽으로 500 여 리 쯤, 의무려산도 대략 2000 리 쯤 이동.표시되어야만 한 것인데, 그러한 지리 이동.조작을 신채호.계연수가 간파하고 지금의 산해관.지금의 북진이 아니라고 한 것이 바로 고대의 요하는 란하.패수는 란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광복후 한국사학계는 신채호.계연수의 정확한 지리 인식을 철저하게 깔아뭉갰다. 그리고는 일본명치왕이 조작한 지도에 맞추어 낙랑군이 대한반도 평양에 설치되었었다라느니 일본명치왕군부 참모부 편찬과 졸개 횡정충직이 1883 년 써제낀 임나고를 계승발전시켜 대한반도 남반부에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었었다며 마치 일본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다.
한국사학계를 비난하는 소위 재야사학도 극히 일부 사실에 약간 가까왔을 뿐 한국사학계 수준이나 거의 마찬가지다. 낙랑군이 갈석산이 있고 진장성 동단이 있는 지점에 설치된 것이 역사 사실인가? 윤내현.이덕일 등의 주장이 역사 사실인가? 한국 역사 지리지는 물론이고 중국 역사 지리지 기록과도 일치하는 모순 없는 논리적인 해석인가? 게다가 안경전.심백강 같은 이들은 패수를 조하 곧 지금의 북운하 동쪽 지류라고까지 주장한다. 조하는 북위 시기 편찬된 <수경주>의 포구수이고 전한이 설치한 어양.우북평 2 개 군 지역을 흐른 물길이다. 무지막지한 주장이며 명백한 망상이고 지속적이면 대국민 사기질에 다름 아니다.
또한 낙랑군이 설치된 곳은 준왕조선의 왕검성이 있던 곳이고 고구려의 평양성이였고 고려의 서경이였으며 이조선의 평양부였는데 지금의 갈석산.산해관 부근이 이조선의 평양부였다는 얘기인가? 이미 천관우가 교치 군.현이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다시 생각해 보지 않는가? 왜 그리 모순되고 미흡한 생각만 하는가?
윤내현 주장처럼 중국 두 번째 정사인 <한서>의 지리지 기록 중 요동군 망평현에 주석된 1250 리 길이 대요수와 <수경주> 대요수 항에 설명된 물길이 지금의 요하라고 인식하는 한 한국의 강단이건 재야건 식민사관.동북공정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각성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을 일순간에 잠재우는 방법은 대한제국 당시의 정확한 지리 지식 뿐이다.
자료 없다고 투정부리지도 말라. 이조선.대한제국 당시의 자료는 널리고 널려 있다.